후보에 없던 광개토대왕이 1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3면

"광개토대왕이 왜 빠졌느냐. 한국은행이 중국 눈치를 너무 보는 것 아니냐."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 왕검도 이젠 지폐에 들어가야 한다."

한국은행의 홈페이지가 열띤 토론회장으로 변했다. 한국은행이 7일 낮 12시 '고액권 관련 의견 게시판'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개설하면서부터다.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한은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한은 왕용기 발권국장의 "의견 코너를 참고해 선호도가 높게 나오는 인물을 새로 후보군에 포함시킬 것"이라는 다짐이 발목을 잡아버렸다. 한은이 약속을 지키려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을 넣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날 오후 8시 현재 의견 코너에 오른 1000건의 글 가운데 300여건이 광개토대왕을 추천했다. 압도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고구려를 자신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사업에 자극받은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을지문덕.양만춘 등 고구려의 장수들과 단군 왕검을 거론한 네티즌도 많았다.

한은 관계자는 "광개토대왕은 20명의 후보군에도 들지 못했는데 네티즌들의 반응이 너무 뜨거워 놀랐다"며 "후보에 포함시킬지 여부는 좀 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광개토대왕이 초상인물로 결정되면 현실적으로 (중국과의) 외교적 파급효과를 고려치 않을 수 없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한은은 자신들이 선정한 10명의 후보에 대해서도 쉽사리 확신을 못하고 있다. 유관순의 경우 항일 시위의 상징적 인물이다. 하지만 너무 이른 나이에 숨져 한국 고액권 화폐를 접할 외국인들이 그의 사상이나 철학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신사임당으로 결정될 경우 어머니와 아들이 동시에 지폐 초상인물에 들어가는 난처한 상황이 된다. 한은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인기투표로 변질돼가는 부작용을 지켜보게 된 형국이다. 한은 관계자는 "장영실.안창호 정도를 제외하면 반대 의견이 만만치 않다"며 "최종 결정이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김준현 기자

[Poll] 고액권 인물 누가 적당하다 생각하십니까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