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鴻章의 화려한 미국 방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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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26면

광서제의 부친 순친왕(가운데)과 자리를 함께한 이홍장(오른쪽). 다리를 벌린 채 발을 땅에 붙이고 두 손을 펴 무릎을 눌러주면 허리가 꼿꼿해지고 위엄 있는 모습이 나온다는 좌여종(坐如鐘) 자세로 앉아 있다. [김명호 제공]

111년 전 여름(1896년 7월 21일 정오) 대청제국(大淸帝國)의 전(前) 직예총독(直隷總督) 겸 북양대신(北洋大臣)인 이홍장(李鴻章)이 미국 뉴욕항에 도착했다. 6개월 전부터 유럽 여러 나라를 순방하며 숱한 화제를 뿌린 74세의 노정객(老政客)을 보기 위한 인파가 아침부터 대로의 양 옆을 메우기 시작했다. 부두 주변 건물의 옥상, 창문, 나무 위는 물론 정박한 배들의 갑판까지 인산인해를 이뤘다. 자리를 잡기 위해 밤을 새운 사람도 부지기수였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자발적으로 나와 국빈을 환영하기는 미 합중국 건국 이래 처음이었다.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21>

이홍장의 수행원은 40명이었다. 요리사와 차 끓이는 사람, 발 닦아주는 사람, 귀 후벼주는 사람 등 세분화돼 있었다.

갑판 위에 나타난 이홍장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선 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좌우를 둘러보자 조복(朝服)을 걸친 미국 주재 중국외교관들과 넋 나간 듯이 바라보던 화교상단(華僑商團) 대표들이 동시에 몸을 90도로 굽혀 국궁례(鞠躬禮)를 행했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다. 호기심 많은 뉴욕인들에겐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뉴욕 타임스는 “살아 움직이는 공자(孔子)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고 보도했다.

부두에 부려놓은 큰 짐만 300건이었다. 이홍장 혼자만 차(茶) 마실 때 쓸 히말라야 설수(雪水)와 광천수를 담아 밀봉한 대형 도자기, 도저히 형용이 불가능한 요리 재료와 술들이 들어 있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한 쌍의 앵무새와 꼬리가 긴 금계(金鷄) 등 이홍장이 평소 옆에 두고 즐기던 조류들도 일행이라면 일행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가장 보물처럼 끼고 다닌 것은 객사(客死)했을 경우 관목(棺木)으로 쓸 몇 쪽의 목판(木板)이었다.

이홍장은 일주일간 머물며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陸軍士官學校)를 구경하고 종교인들을 만났다. 대통령도 두 차례 만났지만 만주어(滿洲語)와 한문(漢文)으로 된 황제(皇帝)의 국서만 전달했다. “국력이 약한 나라는 외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자신의 생각인 양 회담 같은 것은 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떠난 후부터 화교를 대하는 미국인들의 태도가 많이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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