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의 탄생 알리는 팡파레의 쾌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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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호 31면

와인을 마신다는 것,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스스로를 접대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와인의 향과 맛을 음미하며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이야기와 분위기의 효용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더 촘촘한 미각의 분화와 심미안을 동원해야만 알게 되는 와인의 세계. 알면 알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각별하게 다가오는 감각의 층차를 이해하는 일은 삶의 지향과 맞닿아 있다.

윤광준의 생활 명품 이야기-와인 따개 ‘코르키(CORKY)’

추상적 감각의 세계란 절대가치의 추구로 다가선다. 합리나 효용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 다음의 얘기는 의외로 싱거워진다. 절대가치의 추구란 무한체험을 통해 알아가는 미분화된 선택의 확정이다. 와인 선택의 기준과 마시는 방법을 포함한 모든 과정의 중심에 반드시 자기란 주체가 자리 잡지 않으면 안 된다.

난 가끔 친구들과 비원(나의 작업실 이름)에서 와인 마시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다. 모든 서빙은 나의 몫이다. 기꺼이 호스트가 되어 와인의 즐거움을 나누는 일이야말로 풍요의 한 모습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직접 선택한 자잘한 와인 용품을 늘어놓고 온갖 폼을 잡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 가운데 눈에 가장 잘 뜨이는 용품이 와인 따개다. 여행의 횟수가 늘어나면서 눈에 띄는 디자인의 와인 따개 몇 개를 흘려버리지 않고 사 모았다. 모아보니 꽤 다양한 방식의 제품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흔한 스크루 방식, 투 포인트 방식의 집게 스크루, 공기를 불어넣어 압력으로 코르크를 밀어 올리는 에어 블로어 방식….
“인천 앞바다가 사이다로 변해도 컵이 없으면 마시지 못한다.” 세상에 둘도 없는 명품 와인도 마개를 따지 못하면 그저 유리병일 뿐이다. 와인을 마시기 위한 첫 출발은 코르크 마개의 개봉이다. 온갖 방식의 코르크 따개를 써서 와인을 따 보았다.

일반적인 스크루 방식은 싫다.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사용하는 구태의연함을 참을 수 없다. 집게 방식은 단순하고 간편하긴 하나 코르크 마개가 병 속으로 자주 빠지는 단점이 있다. 최종 선택은 에어 블로어 방식이다. 코르크 마개에 침을 꽂아 손으로 펌핑하면 ‘뽕’하는 소리와 함께 코르크가 밀려나온다. 이 순간의 쾌감, 와인의 새로운 탄생을 알리는 팡파레라 할까.

내가 선택한 제품은 스위스의 ‘코르키(CORKY)’다. 유약해 보이지만 강인한 침, 엄지손가락에 번지는 펌핑의 부드러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듯한 정밀함, 이들 과정의 유기적 연결로 따지는 코르크 마개의 힘찬 분출과 음향은 와인 마시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와인 따개 하나 가지고 호들갑 떤다고 비아냥거릴지 모른다.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왜냐하면 선택의 삶이란 세밀한 디테일의 추구인 탓이다. 와인이 혀만의 감각이라면 반쪽이다. 손끝을 포함한 오감의 충족도 중요하다. 나의 감각은 편향을 경계한다. 조화와 균형의 관점이야말로 삶을 온전하게 단련시키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귀까지 즐겁게 해주는 ‘코르키’의 존재는 와인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중요한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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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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