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탐탕(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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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고대의 죄의 개념은 신의 금기를 범하는 것으로 정의됐다. 따라서 죄를 범한 자는 신의 노여움을 사고,죄가 없는 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죄 여부는 용의자의 몸으로 증명된다고 해서 고문이 행해졌던 것이다.
예컨대 용의자의 맨손을 끓는 물에 집어넣도록 해 화상을 입는가 여부에 따라 유무죄를 판별한다는 식이었다. 일본에서는 이같은 고문을 맹신탐탕이라 해서 응신천황때 널리 행해졌다. 정치적인 지배자가 반대자의 제거에 이런 방식을 이용했음은 물론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벌겋게 된 쇠젓가락을 피의자가 맨손으로 쥐게 하거나 독사가 들어있는 항아리 속에 피의자의 손을 넣어 죄의 유무를 가려내기도 했다. 죄의 유무와 관계없는 애초부터 단죄요,형벌의 의식에 불과했다.
조선조 세조때 사육신의 한분인 유응부가 거사전 모의가 탄로나 임금 앞에서 심문을 당했다. 왕이 죄상을 물으니 『정안일(중국사신에게 베푸는 연회)에 한척의 칼로 그대를 없애고 고주(단종)를 복위시키고자 했다』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유죄를 스스로 시인한 것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고문에 못이겨 유응부는 고문현장에서 끝내 죽고만다. 여죄를 캐려는 고문의 단계를 넘어 이미 드러난 죄상에 대한 잔혹한 보복이요,초법적 형벌이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가나 저개발국에서는 가혹한 고문이 성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고대와 마찬가지로 고문이 일종의 형벌임에는 다를바 없다. 끓는 물에 손을 집어넣는 방식이야 사라졌겠지만 피의자의 육체와 정신에 가해지는 고통이 몸을 망가뜨리고 정신을 병들게하는 결과는 화상이나 다름없는 초법적 보복이요,형벌이다.
암울했던 지난 권위주의 시절 우리도 적잖은 고문피해자의 사례가 있었다. 또 수사기관에서 정신병원으로 이송된 사람도 지난 10년동안 70여명에 이른다.
정부는 곧 유엔고문방지협약에 가입키로 하고 필요한 국내 절차를 서두른다고 한다. 사문화되다시피 무시됐던 헌법의 고문금지조항이 부활되고 잠적한 고문전문가를 색출해내는 일이 더 급한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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