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름마을」오명 씻자"부녀자 앞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북으로는 소백산맥에서 뻗어 내린 금병산과 연화봉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마을 앞으로는 남한강지류인 달천강이 휘감아 도는 충북 괴산군 불정면 하문리. 범죄가 날로 증가추세에 있는 가운데 이곳 사람들은 물론 이 마을 출신으로 하문리에 호적을 두고 외지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도 사소한 폭력행사나 교통사고 등 일체의 범죄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지난 80년부터 범죄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은 자랑스러운 전통을 간직하고있는 이 마을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13년째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돼 1일 법의 날을 맞아 정부로부터 기념패를 받았다. 44가구에 1백40명. 50세 이상이70%정도에 이르는 이곳은 조선조 성종 때 안훈이 낙향해 정착한 순흥 안씨 집성촌으로 전체가구의 90%가량인 40가구가 안씨다.
하나의 씨족사회로서 옛날에는 예의범절과 경로효친 사상이 어느 마을보다 충만했지만 해방이후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70년대 초까지는 치안사각지대로 노름꾼들이 극성을 부리던 이름난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을 앞을 흐르는 달천강의 잦은 범람으로 수해를 자주 입어왔던 이 마을사람들은 그때마다 농사는 제쳐놓고 허탈감에 술과 노름으로 소일해왔다.
그러나 부녀자들을 중심으로 마을의 전통을 되살리자는 결의가 싹트기 시작, 우선 「원정 도박꾼」들을 몰아내기 위해 노름판을 뒤엎는가 하면 감시조까지 구성, 외지인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 같은 노력에 자극 받은 노인들도 마을분위기 쇄신에 앞장섰다. 80년 처음으로 범죄 없는 마을로 지정된 이후 노인들을 중심으로 고향인들에게도 편지를 띄워 마을의 전통유지에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해왔다.
이 마을은 총면적 2백74ha중 경지면적이 56ha로 대부분 농사에 의존하고 있지만 호당 평균소득이 1천3백만원정도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장 안상건씨(59)는 『마을이 10년 이상 범죄 없는 마을로 선정되다 보니 주민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어도 전통이 깨질까봐 조심하는 등 양보와 이해가 생활화돼가고 있다』며 대견스러워했다. 【중원=안남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