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프로정치인 "모셔오기"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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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들어 정치인의 TV 출연이 부쩍 늘었다. 여야 국회의원은 물론 장관을 비롯한 관료나 재야인사까지 이젠 TV를 통해 쉽게 만날 수 있다.
정치인의 TV 출연이 러시를 이루게 된 것은 SBS-TV『주병진 쇼』가 처음으로 박찬종 신정당 대표·박희태 전민자당대변인을 출연시켜 좋은반응을 얻으면서부터.『주병진쇼』의 새로운 아이디어에 자극받아 요즘 방송가에서는 정치인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완상부총리, 이부영·이철민주당의원, 재야인사 백기완씨등 올들어 TV에 출연한 정치인은 십수명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이번엔 또 이인제노동부장관이 현직 장관으론 처음 TV드라마에 출연키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장관이 출연하는 프로는 5월6일 밤 8시5분에 방송될 KBS-2TV『TV손자병법』. 이장관은 극중에서도 현직책과 같은 노동부 장관으로 등장, 「진산그룹」직원들이 노사문제로 논쟁을 벌이다 장관을 찾아왔을 때 함께 토론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정치인의 TV출연 붐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정치인과 대중의 거리를 좁혀주고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시켜주는 긍정적인 변화라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로 초기에는 방송 출연을 꺼리던 정치인들도 최근엔 흔쾌히 응할 정도로 정치인들의 의식은 큰 변화를 겪고 있는 듯싶다. 선거때가 아니면 유권자 볼 일이 없었던 정치인들이 TV의 영향력을 자각하고 오락프로에 출연, 자신의 이미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진일보한 우리 정치문화를 보는 것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V프로가 정치인을 요리하는 방법은 한가지 아쉬움을 남긴다. 그것은 TV가 대등한 관계에서 정치인을 받아들이지 않고 머리를 숙이고 모신다는 점이다. 『주병진 쇼』는 예우의 수준을 넘어 시청자들이 알고 싶은 이야기보다 정치인이 하고 싶은 말에 거꾸로 질문을 갖다 붙인 듯한 내용이 주류를 이룬다. 진행자의 지나치게 낮은 태도도 눈에 거슬린다.
회사원들의 노사문제 논쟁에 노동부장관이 직접 참여한다는 『TV손자병법』의 이장관 출연발상도 「알아모시기」에 가깝다. 드라마는 기본적으로 허구다. 실제하지 않을 수도 있는 자상함을 실제처럼 비춰준다. 더구나 극과 현실의 구별이 불분명한 우리나라 드라마 시청자들은 TV속의 모습을 실제로 착각할 수도 있다.
이같은 정치인 출연 프로의 「알아모시기」는 정치인과 국민의 거리감을 좁혀주기보다 오히려 『역시 정치인은 세다』는 비관적인 사회 통념을 TV에서 공증해주는 부작용을 초래할수도 있다.
TV가 정치인과 국민이 만나는 진정한 자리가 되기 위해선 출연만 하면 덕을 보는 정치인들의 만만한 홍보 매체가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손해도 볼 수 있지만 잘만하면 크게 이미지를 크게 부각시킬 수 있는 동등한 위치의 매체로 발돋움해 소신있는 정치인을 불러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남재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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