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면 스스로 밝아진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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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 02면

윤후명씨가 오랜만에 내놓은 소설집 『새의 말을 듣다』를 읽다가 무릎을 쳤습니다. 책 뒤에 붙인 ‘작가의 말’에 그가 쓴 이런 얘기. “‘존구자명(存久自明)’. 오래되면 스스로 밝아진다는 말! (…) 이제까지 나를 오래도록 지켜봐온 사람 혹 있다면 어떻게 여길 것인가. 내 작품은 또 어떨 것인가. 진짜로 올려질 것인가, 가짜로 내려질 것인가.”

순화동 편지

수록 단편을 뒤적이다 ‘서울, 촛불 랩소디’에 눈이 멈췄죠.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서울 청계천을 잇는 공간 속에서 한 여자를 생각하던 그의 귀에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타계 소식이 들려온 대목. 2006년 1월 29일의 일입니다. 그러고는 작가는 줄곧 백남준을 좇아갑니다. 서울 봉은사에서 열린 사십구재에 이르러 그는 무당의 노랫소리를 들어요. “나느은 가요오, 나느은 가요오. 너를 두우고오, 나느은 가요오.” 스스로 표현하기를 “낡은 보수주의자”였기에 백남준의 작품에 호감을 갖지 못했던 그는 뇌리에 남은 굿의 잔상을 되새김하며 깨닫습니다. “사라졌으나 뇌리에 남아 있는 그 무엇. 백남준의 작품이 바로 그것이라고.”

백남준 생전에 기자 일을 구실로 그를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몹시 영리하고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이란 첫인상 뒤에 박수(남자 무당)의 신기(神氣)가 언뜻 비쳤어요. 유럽 문화계가 그에게 ‘동양에서 온 문화 테러리스트’란 호를 내렸으니 여기서 테러리스트란 굿판의 무당을 이른 것이 아닐까, 넘겨짚었죠. 1963년 독일 부퍼탈의 파르나스 화랑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랬습니다. 어린 시절 한국 집에서 큰일을 앞두고 벌이던 굿을 기억한 그는 첫 개인전의 성공을 기원하는 고사를 올리고 싶었다네요. 상에 올릴 삶은 돼지머리를 찾았지만 그 물건이 거기에 있을 까닭이 있었겠습니까. 아쉬운 김에 정육점에 가서 막 자른 소머리를 가져다 전시장 문 위에 걸고(죽은 짐승의 머리를 건물 내부로 들일 수 없는 법이 있었다는 후문)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 앞에서 사진까지 찍었다는데 곧 들이닥친 경찰의 제지로 해프닝은 1시간 만에 끝났다고 하네요. 신문에 대서특필됐으니 굿이 효험은 있었던 모양입니다.

백남준이 깊이 뿌리를 대고 있던 정신의 샘 중 하나가 한국의 무속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평생 교유했던 독일의 전위미술가 요제프 보이스를 위한 굿판을 서울에서 벌였을 때 그는 진짜 박수처럼 보였습니다. 그에게 행위예술은 한바탕 굿이요, 한풀이였던 것 아닐까요.

“가난한 나라에서 온 가난한 사람,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뿐”이라던 그는 평생 가난하게 살다 가난하게 갔습니다. 그는 비디오 아트를 ‘허업(虛業)’이라 불렀는데 그가 죽기 전 남긴 말이 그 정의가 될까요. “비디오테이프는 되돌림을 할 수가 있지만 인생에는 되돌림 버튼이 없다. 한 번 테이프에 촬영되면 인간은 죽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7월 27일부터 여의도 KBS 특별전시장에서 열리는 ‘백남준 비디오 광시곡’전은 굿판의 광기, 인간의 한계를 비디오 아트로 뛰어넘으려던 그의 분신이 모인 또 하나의 굿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 윤후명 또한 ‘서울, 촛불 랩소디’를 이렇게 마무리하네요. “나는 지금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나의 다른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고 믿었다. 엄마…나느은…나느은 가요오.” ‘존구자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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