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해양시대] 下. '해운 한국' 활로는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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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물류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부상하고 있는 곳은 상하이(上海)뿐 아니다. 홍콩에서 60km 떨어진 선전(深)경제특구는 지난해 20피트 컨테이너(TEU) 기준으로 처리량 1천만개를 돌파했으며, 상하이에서 남쪽으로 1백60km 떨어진 저장(浙江)성 닝보(寧波)항도 1~2년 안에 1천만개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들은 모두 중국에서 유럽.미국 등으로 가는 물량을 큰 배로 바꿔싣는(환적) 항구 역할을 해 짭짤한 재미를 봤던 부산항을 위협하는 경쟁자들이다. 지난해 말 부산항 화물의 40%는 이 같은 물량이었다.

홍콩, 대만 가오슝(高雄)등도 부산과 비슷한 처지다. 하지만 홍콩은 자동화된 부두설비와 금융.정보 서비스가 강점이다. 정보기술(IT)등 첨단기술 덕에 시간당 컨테이너 처리 능력이 크레인 하나당 30개를 훌쩍 넘는다. 홍콩항에서 최대 터미널을 운영하는 HIT사의 케네스 웡 전무는 "선전항이 급속히 크고 있지만 홍콩항은 여전히 빠르고 편리해 당분간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항의 현실은 어떤가. 신선대 등 일부 부두만 간신히 시간당 컨테이너 처리 능력이 30개를 넘길 정도로 시설이 낙후된 편이다. 육상교통도 경쟁력이 없다. 지난해 해양수산부 자료에 따르면 홍콩을 1백점으로 했을때 부산의 생산성(입항에서 출항까지 소요시간당 작업량)은 평균 76점에 그쳤다. 싱가포르와 가오슝에 비해서도 평균 19점이 뒤졌다.

이런 현실은 고객 선사들의 외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지난해 부산항에 기항하는 27개 선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전체 선사의 53%인 14개사가 '부산항에서 떠날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 가운데 8개사는 '옮길 가능성이 크다'고 답했다. 한국 선사 10개를 빼면 외국 선사 대부분이 이미 마음이 떠난 셈이다. 무역협회 동북아물류실 허문구 박사는 "상하이 신항이 완공되면 부산항의 물동량이 최고 28% 줄어들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환적 물량이 줄어들면 부산항의 타격은 엄청나다. 통상 배 한척이 들어오면 항구는 하루 평균 10억원의 수입이 생긴다. 제3국행 컨테이너 한개를 옮겨 실어주면 2백~2백50달러를 벌 수 있다. 연간 8천억원이 날아갈 위기인 것이다.

부산항은 2011년까지 부산항과 광양항에 15조6천억원을 투입, 3천만TEU를 처리하는 항구로 육성하는 정부의 '동북아 물류중심'전략에 희망을 걸고 있다. 하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중국 환적 물량이 빠져나갈 경우 한국의 자체 물량만 처리하는 항구나, 극단적인 경우에는 한국 물량을 상하이로 실어내는 로컬 항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강호경 현대상선 상하이 지사장은 "국내 제조업 기반을 확충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중국 동북 3성, 러시아 연해주(프리모르스키)등의 물동량을 부산으로 유치할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우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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