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곡예」의 치밀한 계산/송영선 국방연구원일본실장(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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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팀」 중단·특별사찰회피 겨냥/핵이 「남북문제 핵」 돼선 안돼
북한이 지난 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전세계를 불안케하고 있다.
북한은 92년 1월 핵안전협정을 체결한지 1년만에,말하자면 NPT 정신에 충실하겠다는 의지를 표시한지 1년도 안되어 다시 이 조약을 탈퇴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물론 NPT 탈퇴후에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회원국으로서 의무사항을 지키지 않겠다고 거절하기까지는 아직도 90일이나 시간이 남아있다. 문제는 이 시간이 북한이 최악의 사태로 몰고갈 시나리오를 상정할때 결코 문제해결의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1년만에 약속 번복
핵무기는 크게 고농축한 우라늄탄과 재처리한 플루토늄으로 만든 핵폭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북한이 현재 시도하고 있는 것은 플루토늄탄이다. 이 플루토늄탄을 만드는 핵심시설인 재처리시설이 여러자료를 통해 볼때 88년 8∼9월께에 건물공사를 시작한 것은 거의 확실하다.
문제는 이것의 내부시설 공사완료 시점과 가동여부다. 첫번째 가동한 시나리오는 길이 1백90m·폭 20m 크기의 연간 2백∼3백t의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시설의 완공에 약 2년반 정도의 시간을 잡고 약 6개월 정도의 시험가동기간을 거쳤을 경우 재처리시설 가동률을 80%로 상정하면 93년 현재 20㎏에 가까운 플루토늄까지도 추출했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가능한 시나리오는 북한이 영변이외의 지역에 재처리시설이나 이와 같은 기능을 할 다른 시설을 갖고 있지 않을 경우다.
92년 중순까지 재처리시설을 시험가동한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는 또다른 분석을 토대로 볼 때 한스 블릭스 IAEA사무총장이 92년 5월 임시사찰을 했을때쯤 재처리시설은 완공되었으나,그후 6차례의 계속적인 IAEA 사찰때문에 실질적으로 「마음놓고」 가동시킬 시간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이 사용후 핵연료를 상당한 수준까지 비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영변 재처리시설을 통한 플루토늄 추출은 시간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번째 가능한 시나리오는 IAEA가 특별사찰을 실시하기를 바라나 북한이 한사코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두곳의 혐의시설이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할 수 있는 시설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것이다.
○가장 강력한 카드
북한의 핵정책,그리고 핵개발의지와 그간의 70여차례에 걸친 고폭실험을 비춰보더라도 사용후 핵연료로부터 플루토늄을 추출해 왔을 가능성은 거의 확실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번 NPT탈퇴는 우리들의 눈에는 비이성적인 행동이지만 북한으로서는 대내외적으로 치밀한 계산을 하고 던진 유일하고 가장 강력한 카드다.
북한을 제외하고도 전세계 약 15개국 정도의 핵보유국 및 핵보유 가능국이 있는데 유독 북한에만 세계 최초로 특별사찰을 받을 것을 종용하는 것은 IAEA가 공정성을 잃었다는 것이 북한측 논리다.
따라서 NPT탈퇴선언을 함으로써 미국으로부터 한반도에서 팀스피리트훈련을 중단시키겠다는 답을 얻어내고 나아가 IAEA로부터는 특별사찰도 받지 않겠다는 두개의 목표를 동시에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특별핵사찰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현재 NPT회원국으로 핵개발 수준이 상당한 수준에 와있는 국가가 향후 IAEA의 특별사찰을 거절할 수 있는 공공연한 명분을 제공하는 선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태도가 IAEA나 미국을 비롯한 핵보유국에 큰 문제를 던져주고 있다.
즉 1970년 NPT가 발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지역 군비경쟁이 확산될 무드를 고려해 본다면,향후 5∼10년후의 핵확산은 결코 줄어들 것 같지않다.
이러한 문제를 충분히 감시한 기존의 핵보유국이나 IAEA는 특히 95년 NPT 유효기간 만료를 앞두고 북한의 처사가 핵보유를 시도하는 국가들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해 볼 때 화약고에 성냥을 던지는 처사로 보임에 틀림없다. 북한은 이러한 반응까지도 계산에 넣고 이 카드를 던진 것이다.
○관망만 해선 곤란
이제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불신과 「설마」라는 태도로 관망하고 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한민족이라는 감상주의가 북한의 핵개발능력과 의지파악을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 더이상 북한으로 하여금 북한 핵개발을 남북관계를 주도하는 변수로 활용하도록 내버려둬서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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