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불감증 일깨운 인사파문(공직자상·공직자윤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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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흠있으면 공직 못맡는다” 의식확산/역대정권­문민정부 질적차이 실감
땅 투기혐의를 부인한 박양실 보사장관의 기자회견은 우리사회의 도덕적 불감증이 이미 위험수위에 다다랐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불법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주거지 변경의 편법을 동원하는데 아무런 갈등을 느끼지 못했다는 점이나 남들도 다 그러는데 나만 갖고 왜 이러느냐는 강변에서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다.
가진 자나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의 무의식이 더이상 건전한 상식이나 윤리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기 때문이다.
길게 보면 이같은 현상은 성장만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운 60∼70년대식 풍조의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젖어왔다.
따라서 웬만한 부정과 불법은 필요악적 요소라고 다소 관대하게 치부하여 사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애써 크게 문제삼지 않아왔던 것도 사실이다.
경제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다.
3공화국이래 노태우정권에 이르기까지 역대정권은 불법적인 「쿠데타」에 의해 정권을 맡아 계속 그 연장선상에서 국가운영을 떠맡아왔다.
과정이야 어쨌든 권력투쟁에서 이기면,권력을 잡으면 모든 과거사는 덮어졌다.
국민의 손에서 비롯된 권력이 아니니 대통령의 인사도 시시비비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따라서 대통령의 인사권행사에 수군거릴 수는 있었으나 공개적으로 시비를 거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특히 새로 임명된 각료 재직중의 부정도 아닌 「과거의 일」을 문제삼는 최근의 사태는 혁명적 변화라고 아니할 수 없다. 공직사회는 이제 위축이 아니라 전율에 가까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사태 전개가 심상치 않다고 본 것이다.
최근의 사태전개가 본질적으로는 문민정부라는 「권력의 질적차이」가 가져온 현상이라고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공직사회는 그동안 「문민정부」라는 표현에 은근히 부정적인 시선을 보낸 것이 사실이다. 형식요건을 따지면 과거의 정권도 문민정부라는 주장이었다. 또 권력의 속성은 다 그렇고 그런 것인데 문민정부라고 해서 무엇이 그리 크게 달라지겠느냐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는 우리 정치문화가 「신민적 정치문화」에서 「참여형 정치문화」로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권력의 뿌리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권력의 행사에도 질적변화를 강제화한 것이다. 따라서 공직사회의 행태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과거처럼 권력자에게만 충성하면 「개인적인 비리」는 모조리 눈감아지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최근의 사태가 교훈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우선 공직사회에 몸담으려면 도덕적으로도 국민을 선도할만한 몸가짐을 가져야겠다는 의식이 공직사회에 번지기 시작했다.
『과거처럼 관의 결정에 무조건 복종하던 시대는 지난 것 같습니다. 이제는 「네가 그런 말과 지시를 할 자격이 있느냐」고 따지는 상황이 왔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에게도 혹시 문제될 일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중앙부처의 한 공무원은 그러나 최근의 사태발전이 무조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하루아침에 무균사회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면 빈대잡다 초가삼간까지 다 태워버릴지도 모릅니다. 민·관은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협조와 조화가 우선돼야 하는 상대입니다. 최근의 사태전개가 자칫 민에 의한 관의 총체적 부정으로 이어지면 개혁은 커녕 심각한 사회혼란만 초래할 겁니다.』
공직사회의 이같은 우려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그러나 서울시장의 사퇴로 시작된 최근의 사태전개에도 바람직스럽지 않은 측면은 있다.
각료의 자격문제가 공개적으로 매도되는 형태보다는 자격의 시비가 있을만한 인물은 제도적으로 사전에 걸러지는 것이 우리사회에 주는 충격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사회적인 관행으로 자리잡은 부조리를 뜯어고치는,그래서 충격이 클 수밖에 없는 개혁을 하기 위해서는 그런 면밀한 준비를 선행하는 사려깊음이 요구되기 때문이다.<이재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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