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편소설 『바리데기』 출간한 황석영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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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씨가 새 소설 『바리데기』를 발표했다. 파리에 머물던 작가는 지난 주말 귀국했다. [사진=김태성 기자]

황석영(64)은 2000년대 작가다. 1970년대에 이미 한국 리얼리즘 소설의 한 경지를 보인 작가에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을 수 있겠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황석영은 오늘의 작가다.

여기엔 긴 사연이 있다. 작가 황석영에게 90년대는 없었다. 89년 방북했고, 이후 외국을 떠돌다 93년 귀국했고 바로 구속·수감됐다. 황석영이 세상으로 돌아온 건 98년이었다. 그러나 여느 거장의 김빠진 복귀와 황석영의 귀환은 차원이 달랐다. 긴 공백 끝에 발표한 『오래된 정원』(2000년) 『손님』(2001년) 『심청』(2003년)은 한국소설의 새 장(場)을 열었다는 극찬을 받았다.

『오래된 정원』에서 황석영은 과거와 현재 두 개의 시점을 엇갈아 배치하는 서사 방식을 선보였고 『손님』에선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에서 벌어진 대학살 사건을 굿판 가락에 얹어 풀어냈다. 『심청』은 전래동화 ‘심청전’의 모티브를 갖고 19세기 동아시아 근대사를 다시 썼다.

21세기 들어 황석영이 내놓은 소설들은 하나같이 여태의 한국소설이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이뤄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의 당돌한 작품보다 그의 소설은 낯설었고, 어느 대하소설보다 스케일이 컸다. 문학적으로 황석영은, 가장 21세기적인 작가다.

그가 새 장편 『바리데기』(창비)를 발표했다. 프랑스 파리에 머물던 작가는 지난 주말 귀국했고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기자들과 만났다. 그는 “90년대 감방에 있을 때부터 구상했던 작품”이라고 소설을 소개했다.

소설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바리데기 신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버려진 한 여자아이가 남의 손에 자란 뒤 저승에서 약수를 구해와 죽은 아버지를 살려낸다는 얘기다. 효를 강조한 전설이기도 하고, 한국 페미니즘 문학에서도 주요 텍스트로 읽힌다. 무당 사이에선 서사 무가의 형태로 전해 내려온다.

황석영은 이 신화를 현대적이고 국제적으로 재구성했다. 아니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바리’란 이름의 탈북소녀가 중국을 헤매다 밀항선을 타고 영국으로 건너가는 신산한 여정을, 황석영은 특유의 잰 문장으로 담아냈다.

이번에도 황석영의 형식 실험은 빛을 발한다. 작가는 “바리데기 신화를 우화적으로 처리한 두 장면에 특히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두 장면이라면, 바리가 밀항선에서 온갖 고생을 하는 장면과 저승으로 길을 떠나는 장면이다. 그 두 대목에서 작가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부러 흩어 놓았다. “굿 양식을 차용한 것”이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소설은 한국적인 소재에서 출발해 세계적인 문제까지 포섭하고 있다. 작가는 소설의 주제는 “이동과 조화”라고 잘라 말했다. ‘이동’은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으로 묶여 있다는 얘기고 ‘조화’는 그 세계 안에서 이질적인 사람들이 함께 사는 모양을 가리킨다.

“내가 겪은 유럽의 사회는 매우 불안정했다. 옛날 식민지에서 부려먹었던 사람들이 지금은 유럽으로 건너가 불법 체류하며 하층민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도둑이 들끓고 복지는 점점 불안해지고 있다. 19세기 제국주의의 업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황석영은 이번 소설에서 한국적인 형식 안에 한국적인 얘기와 세계적인 얘기 두 가지를 모두 담았다. 황석영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시도만이 한국소설이 해외에서 통하는 길이란 사실을. 

손민호 기자<ploveson@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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