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공무원노조의 어이없는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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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정부에 요구한 올해 단체교섭 안이 공개됐다. 한마디로 가관이다. 임금을 공기업 수준으로 올려 달라는 것부터 ‘휴가를 늘려 달라’ ‘공무원연금을 개혁하지 마라’ ‘정년을 연장해 달라’ 등 무려 362개항이 포함됐다. 성과급을 폐지하라는 요구도 있다. 경쟁은 피곤하니 사이 좋게 나눠 갖겠다는 얘기다. 심지어 퇴직 예정 공무원의 유적지 관람 경비로 500만원을 책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공기업 감사의 ‘이과수 폭포 외유 파문’이 엊그제인데, 제정신인가. 공무원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면 나라가 거덜날 판이다.

 공무원노조 공동위원장은 “해방 이후 첫 교섭인 만큼 요구조건이 많다. 공무원 개혁의 첫걸음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이 정부에서 세금 빼먹고 사는 사람들은 너나없이 ‘개혁’ ‘혁신’이라는 말을 아무 데나 붙인다. 국민 호주머니 터는 게 개혁이고, 혁신인가. 염치도 없다. 국민의 공복임을 포기한 것이고, 말 없이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작금의 공무원 왕국은 이 정부가 만들었다. 철밥통을 공고히 하고, 연금을 듬뿍 주고, 임금도 올려줬다. 공무원을 5만 명이나 늘렸고, 향후 5년간 5만 명을 더 늘릴 계획이다. 철밥통을 깨도 시원찮은 마당에 몸집을 키운 것이다. 국민은 공무원 얘기만 나오면 겁부터 나는데, 이들은 돈이 모자라면 국민 호주머니를 쥐어짜면 되니 무슨 걱정이 있겠나. 민간은 죽을 맛이요, 공무원은 별천지에서 노는 것이다. 이러니 서울시가 7, 9급 하위직 공무원 1732명을 뽑는데 전국에서 14만여 명의 젊은이가 몰린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공무원노조는 세금을 내는 국민 대표와 협상해야 맞다. 정부가 국민을 대신해 협상하는 셈인데, 공무원을 감싸는 이 정부의 행태를 감안하면 나라 곳간을 제대로 지켜낼지 영 미덥지 않다. 정부는 공무원노조에 끌려다녀선 안 된다. 공무원노조도 요구 안을 전면 수정하라. 국민이 이번 협상을 지켜보고 있다. 반드시 책임을 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