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먼저 할 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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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의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문제가 우리에게도 새로운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외무부는 아직 정부입장이 결정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으나 실익과 다자외교차원에서 볼 때 일본의 진출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견이 정부일각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것 같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성격과 기능,그리고 변화된 세계의 세력판도에 비추어 볼 때 안보리의 개편은 당연한 대세다. 또 그에 따라 상임이사국을 추가하자면 일본을 제외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일본간에는 그러한 일반적인 논리를 그대로 적용할 수만은 없는 특수한 상황이 개재되어 있다. 그 하나는 우리나라와 일본간의 지정학적 관계다.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독일이나 인도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다. 일본은 우리의 바로 이웃 나라다. 이런 나라가 강력한 국제적 지위를 획득한다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안보면에 크나 큰 변화를 가져올 중대 사안이다. 이렇게 문제가 중대한 데도 그저 일본의 국제적 지위가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는데 현실적으로 무리가 없다는 논리만으로 그대로 수용될 수 있을 것인가.
또 하나의 특수상황은 국민감정과 과거 역사의 청산이라는 해묵은 문제가 가로 놓여 있다는 점이다. 한일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더욱 강조될 수 밖에 없는 것도 두나라 사이에는 이러한 두나라만의 특수한 문제가 현실문제로 제기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즉,한일간의 나쁜 국민감정과 과거역사에 대한 불충분한 청산은 이웃 일본이 강력한 국제적 지위를 차지하는데 대한 의구심을 더욱 높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모로 보나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우리의 입장정리를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실익을 위해 빠른 입장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겠으나 실익을 따질 쪽은 우리이기에 앞서 일본이다. 일본이야말로 외교적 실익을 따져 한국민의 불신감과 걱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가시적인 조처를 서둘러야 한다.
일본이 그런 성실하고 겸허한 자세를 취한다면 우리로서도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또 국민감정과 과거역사의 청산문제 이외에도 한일간에는 서로 협조하고 함께 풀어 나가야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한반도의 핵문제,경제·기술협력,다자간 안보협력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한일간에 어떤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또 동북아정세의 장기적 변화에 대해 어떤 전망을 가지고 일본문제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미래지향이라 하지만 미래는 과거와 현재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다. 일본의 안보리 진출문제는 일본이 서두를 문제지 우리가 입장정리를 서두를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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