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벽 높아지는 미 보호무역/EC제품 구매금지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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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선거때 신세진 노조·업계압력 때문”/타국서 보복우려 미국내서도 비판
빌 클린턴 행정부가 철강제품에 대한 반덤핑관세 부과에 이어 내린 통신기기와 전기설비 분야에 대한 유럽공동체(EC)제품의 정부입찰제외 예비결정을 내렸다. 이번 조치는 클린턴대통령까지 직접 간여한 첫번째 무역규제 조치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미키 캔터 미 무역대표부(USTR)대표는 이 문제를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와 연계시키고 있어 미국의 결심이 단지 엄포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은 국제무역에서 자유무역을 확대한다는 방침아래 현재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에서도 정부구매물자에 대한 자유화를 추진중이었으나 EC가 이러한 규제를 풀지 않을 경우 미국도 정부구매물자 분야에서의 자유화를 포기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미 행정부의 이같은 결정으로 UR협상의 타결이 더욱 어렵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클린턴행정부는 과연 어느선까지 자유무역을 포기하고 보호무여주의를 밀고 갈 것인지가 각국의 관심거리다.
사실 클린턴행정부는 출범후 겨우 10여일 밖에 지나지 않았고 클린턴의 경제적 관심도 대외무역분야보다 경제성장과 재정적자 해소에 쏠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무역마찰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는 것으로 비치는 것은 미국 업계의 압력때문인 측면도 강하다.
미 자동차업계는 일본산 자동차에 대한 쿼타제의 엄격한 실시를 요구하고 있고 반도체업계에서는 일본이 미국산 부품을 20% 사용해 주기로 약속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규제를 요청하고 있다.
미 석유업계에서는 에너지의 안보적 가치를 들어 외국산 원유에 대해 수입세를 부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업계의 요구는 이제는 섬유·의류업계까지 확산되고 있다.
미 업계가 이렇게 강한 목소리를 갖게 된데는 클린턴행정부의 약점에도 기인된다. 우선 클린턴행정부는 선거공약인 의료보험개선 문제 해결,직업훈련 확대 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종업원을 두고 있는 기업의 기여가 필요하며 이는 기업에 또다른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기업으로 하여금 이러한 추가부담을 감내케 하기 위해서는 제품가격을 올리거나 판매를 늘려줄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자연히 보호무역주의로 갈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또하나 클린턴은 선거때 노동조합에 가장 많은 신세를 졌다는 사실이다. 미 철강노동조합은 클린턴에게 선거자금으로 40여만달러를 기부했으며 미 자동차노동조합은 22만달러를 제공했다.
따라서 클린턴행정부로서는 조금 손해가 나더라도 국내산업을 보호하라는 이들의 요구를 물리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과 노동조합쪽의 요구가 전폭적으로 받아들여질 것인지 여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다.
우선 미국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한계에 달한 국내수요보다 수출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 조지 부시 전 행정부 때부터 계속된 정책이다. 그러나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나갈 경우 해외에서 무역상대국의 보호무역정책 대응 도입이라는 역효과에 부닥치게 된다는 것이 비판적 견해의 주장이다.
또한 일본·EC·한국 등이 국내산업을 이유로 무역장벽을 쌓을 경우 미국도 논리적 대응방법이 없게 된다.
따라서 클린턴행정부가 아직 확실한 무역노선을 결정짓지 못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우선 미 의회가 3월2일까지 한정한 UR협상을 어떻게 매듭할 것이냐와 부시행정부가 멕시코와 맺기로 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를 보아야만 클린턴행정부의 진의가 파악될 수 있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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