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중국ㆍ인도가 미국을 추월한다는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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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호 20면

잭 웰치(72·오른쪽)는 전설적인 경영인으로 세계 최대 기업인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CEO)를 20년간 맡았다. 웰치의 아내인 수지 웰치(48·왼쪽)는 세계적 학술지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편집장을 지냈다.

A: 우리 부부는 경제나 정치의 앞날을 예측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미국의 현주소를 이해하는 데 경제나 정치의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능력이 필요치도 않습니다.

미국은 세계 경제 헤게모니 경쟁에서 단연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중국보다 다섯 배나 큽니다. 인도보다는 무려 열다섯 배나 크죠. 그러나 미국의 인구는 중국이나 인도의 25%도 되지 않습니다. 바로 이 점 덕분에 미국은 경제적 번영에 필요한 여건뿐 아니라 교육ㆍ보건ㆍ안보 면에서 훨씬 더 좋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의 경제 규모가 언제 미국을 추월할지 알아보기 위해 모눈종이에다 그래프를 한번 그려볼까요. 미국 경제가 지금처럼 해마다 3%씩 성장하고 중국과 인도가 8% 정도 성장한다고 가정하고 그래프를 그려보면 결과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은 2040년께 미국을 추월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인도는 2060년께 미국을 제칠 것으로 보입니다(그래프 참조). 이를 근거로 많은 사람이 금세기(21세기) 중반 이후에는 미국이 중국과 인도라는 새 수퍼파워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생각이 다릅니다. 두 나라가 미국을 그렇게 빨리 추월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중국과 인도가 미국을 위협한다는 예상은 너무나 단선적입니다. 미국ㆍ중국ㆍ인도가 지금처럼 성장을 계속한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경기침체도 발생하지 않고 금융위기도 겪지 않으며 정치적 격변도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존 체제를 뒤흔드는 국민의 봉기도 없다고 가정합니다. 이는 비현실적인 논리지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다고 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요즘 중국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결합하는 불안한 실험을 벌이고 있습니다. 인도는 뿌리깊은 관료주의와 부패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미국도 다양한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세 나라의 발전 모습은 단선적일 수 없습니다. 지그재그 형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선적인 미래예측에는 빠진 게 또 있습니다. 미국ㆍ중국ㆍ인도가 중동지역 등 세계 각국과 벌이는 상호작용이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한 나라가 다른 지역 또는 다른 나라와 어떻게 상호 작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20~30년 동안의 발전양상이 많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큰 프리즘으로 얼마나 다양한 변수를 조망해야 앞으로 50년 동안 세 나라 사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를 짐작해볼 수 있을까요? 적어도 미국의 성장률을 3% 수준으로, 중국과 인도 성장률을 8% 선으로 가정하고 미래 경제 규모를 추정하는 방식이 옳지 않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부질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참에 우리는 시스템이라는 말을 음미해봐야 합니다. 시스템은 부분의 합이지만 단순합계가 아닙니다. 부분의 합보다 클 수도, 작을 수도 있습니다. 한 나라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면 예상했던 대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시스템이 무너지면 경제는 금세 뒷걸음질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중국과 인도에 추월당할까 지금부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미국 국가(國歌)인 ‘성조기여 영원하라!’를 부르며 자부심을 고취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부부는 경제 규모가 경쟁국가보다 큰지 작은지에 따라 미국의 헤게모니가 변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국이 한 나라로서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자유와 안정 같은 요소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미국 정당들은 서로 다른 주장을 내놓고 있습니다. 때로는 격렬하게 대립하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정부의 기능이 마비되지는 않습니다. 전체적으로 봐서 미국 사법 시스템은 정의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역별ㆍ계층별로 보면 차이가 나지만 의료서비스가 폭넓게 제공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ㆍ고등학교 교육이 삐거덕거리는 게 사실이지만 대학교육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납니다. 혁신적인 마인드를 갖춘 과학ㆍ기술 부문의 박사 학위자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또 다른 결정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공을 갈급하는 도전적인 기업인과 적극적인 투자자들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이들이 발휘하는 힘은 강력할 뿐만 아니라 어떤 나라도 모방하기 힘듭니다.

중국과 인도에도 창업해 막대한 돈을 거머쥐고 싶어 하는 야심만만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들어 더 많은 사람이 돈맛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벤처기업인의 도전정신과 창의성 면에서 중국이나 인도는 미국을 능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두 나라가 현재 기계적이고 도식적인 생각을 버리고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을 제대로 받아들여 소화하기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흘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조화로운 사회건설 등 실패 가능성이 높은 사회적 실험은 접어두더라도 시장경제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인구 비중은 전체의 25% 선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아이 출산정책 때문에 인구 노령화가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도는 가지지 못한 자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던 부패도 골칫거리입니다. 인도가 민주주의 국가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만 여러 당이 난립해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미국 시스템이 완벽하고 경제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눈종이를 다시 꺼내 현재 추세대로 재정적자가 계속되면 어떻게 될지 한번 그려보세요. 20년 뒤에는 재정문제가 폭발하게 됩니다. 미국이 어떻게 세수(稅收)를 확대하고
지출을 억제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성장잠재력이 결정될 것입니다.

다행히 미국은 안정적이고 유연한 시스템 덕분에 대공황이나 냉전 같은 역사적 걸림돌을 극복해왔습니다. 이런 면에서 미국의 앞날이 비관적이라기보다는 낙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경제 헤게모니는 금세기 안에 흔들린다고 말하기 힘듭니다. 세계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성장추세를 단선적으로 연장하기보다 더 많은 변수를 감안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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