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공행상(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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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잘되면 충신이요,못되면 역적」이라는 말은 한낱 속담에 불과하지만 변혁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말만큼 실감나는 말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표적인 예를 조선조 단종·세조연간에 벌어졌던 일련의 사태에서 엿볼 수 있다.
단종이 즉위하던 해(1453년) 권람·한명회 등과 함께 계유정란을 일으킨 수양대군은 2년후 스스로 왕위에 오르고 정권찬탈에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정란공신」의 칭호를 부여한다. 그러나 세조가 등극한 다음해(1456년) 성삼문·박팽년 등 이른바 사육신이 주동이 되어 단종복위를 꾀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한다.
「역사에 가정이란 있을 수 없다」지만 만약 수양대군이 계유정란에 실패했더라면 그들 일당은 공신은 커녕 역적으로 몰려 처단됐을 것이며,성삼문 등이 거사에 성공했더라면 오히려 그들이 공신의 칭호를 받았을 것이다.
해방이후 현대정치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5·16군사쿠데타나 12·12사태는 몇몇 사람들의 순간적인 행동이 역사를 뒤바꿔 놓았으며,많은 사람들의 운명을 영락으로부터 영화로 올려놓았다. 실패한 경우 그들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가는 일이다. 물론 그와 같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가치관은 별개의 문제다.
12·18대통령선거에서 막바지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부산기관장모임」이었다. 국민들은 그 사건이 선거결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리라 보았고,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야당후보가 당선하는 경우 「공신1호」는 두말할 나위없이 그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같은 예상은 전혀 빗나갔고,오히려 그 사건이 당선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자 사람들은 역시 그들이 「공신1호」라고 수군거리고 있다.
다소 장난기가 들어있겠지만 얘기대로 된다면 끔찍한 일이다. 고려·조선조때 국가나 왕실을 위해 공을 세웠다 해서 공신칭호를 받은 사람들 가운데도 후세에 이르러 부당하다고 지적된 사람이 많고보면 논공행상을 위주로한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
현대사회에서의 정치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마도 대다수의 국민들은 새 정부의 인사가 능력위주로 될 것이냐,논공행상식으로 될 것이냐를 예의주시할 것이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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