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권력' 수사 검찰 독립 元年 될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 현관에서 엘리베이터까지 20여m. 안대희 중수부장이 차에서 내려 로비를 걷는 10여초. 대검 중앙수사부가 하는 일을 감 잡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김○○씨 소환 조사했습니까.""했지요."

"누구 관련입니까." "이광재씨 관련입니다."

지난 22일 오전 8시30분 검정색 그랜저에서 내린 安중수부장과, 진을 치며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나눈 대화의 전부다. 7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도, 수사팀이 있는 10층과 11층도 철문으로 굳게 차단돼 있다.

이날은 한나라당 김영일 의원의 집과 롯데그룹 사옥, 롯데 임원 승용차 등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하기로 한 날이다. 중수부 간부 회의(오전 9시30분), 송광수 검찰총장 주재의 월요 간부회의(오전 10시), '별 소득이 없었다'는 압수수색 결과 보고(오후 2~3시), 宋총장과 김종빈 대검차장.安중수부장.문효남 수사기획관 등이 모인 간부회의(오후 6시)가 계속됐다. 늘 그렇듯 수사팀은 수사팀대로 밤 늦게까지 부산하게 움직였다.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일요일인 28일 밤에도 중수부의 창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

2003년 가장 주목받은 한 곳인 대검 중수부. 나라종금 사건 재수사, 대북송금 의혹 사건에서 불거진 현대비자금 사건, SK 비자금 사건, 불법 대선자금과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까지 봄부터 쉴 새 없이 한 해를 달려왔다. 절대권력에 머물던 거물들이 줄줄이 감옥에 갔고, 5대 기업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정치와 경제에 미친 중수부의 영향은 컸다. 그래서 중수부를 '대한민국 구조조정본부'라고 하는 말이 나왔다. 송광수 검찰총장과 안대희 중수부장에겐 '송짱''안짱'이란 애칭도 붙여졌다.

중수부의 수사 기능을 없애자는 연초의 검찰 개혁안은 지금 쏙 들어갔다. 거꾸로 검사.수사관 등 1백80여명이 진을 친 역대 가장 큰 덩치다. 그래도 누구 하나 시비를 걸지 않는다. 그만큼 국민적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청와대.거대 야당 등 '살아있는 권력'을 단죄하면서 지금 중수부의 수사는 절정에 올라 있다. 대통령 취임 첫해에 측근비리 전면수사에 나선 것은 검찰 사상 처음이다.

"마지막 공직이라고 생각하고 국민 신뢰를 되찾는 일을 회피하지 않겠다." 안대희 중수부장이나 문효남 수사기획관은 요즘 '사표 낼 각오'를 입에 담고 다닌다.

그럼에도 한쪽에선 야당에 더 치우친 불공정 수사라는 지적이 계속된다. 또 미온적이던 검찰이 측근비리 특검 얘기가 나오자 노무현 대통령 측근 안희정씨를 구속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과연 검찰이 정치적으로 독립해 엄정한 수사권을 확립할 수 있을지,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수 있을지 중수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검찰의 실험은 기대 속에 이제 해를 넘기고 있다.

강주안.임장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