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장전입보다 솔직하지 못한 게 더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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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열린우리당 김혁규 의원이 이명박 후보의 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한 지 4일 만인 그제 이 후보는 다섯 차례의 위장전입을 시인했다. 자녀들의 사립학교 입학 등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지지율 1위인 이 후보는 당내 경쟁 진영과 범여권으로부터 많은 의혹 공세를 받아 왔다. 위장전입은 그가 처음으로 의혹을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이 후보는 "국민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리고 "부동산 투기 의혹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아마도 자신의 행위가 과거 우리 사회에 흔히 있었던 비정상적 관행 정도로 이해되기를 바라는 듯하다. 사실 1970년대 이래 개발과 혼돈의 시대를 살아 오면서 위장전입이나 이중 부동산 매매계약서 같은 부적절한 관행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비판자들은 김대중 정부 시절 장상 국무총리 서리도 세 건의 위장전입이 드러나 결국 임명동의를 받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장 서리는 이 후보와는 달랐다. 땅투기 의혹, 자택 불법개조, 학력 허위기재 의혹 등 다른 사안들이 겹쳤다.

그렇다고 해도 이 후보가 보여준 태도는 유권자의 의식을 너무 안이하게 여긴 것이다.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또 다른 전과가 있다. 위법이 처음이 아닌 것이다. 그는 잘못의 무게를 겸허히 다시 재봐야 한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에겐 무엇보다 준법정신이 필요하다.

더 중요한 문제는 정직성이다. 폭로가 나온 당일 이 후보 캠프는 김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했다. 부동산투기 의혹 제기 때문이라 했는데 위장전입 시인은 없었다. 다음 날 이 후보는 김 의원을 가리켜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변해 헛소리한다"고 비난했고 "세상이 미쳐 날뛰고 있다"고 했다. 위장전입 인정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는 왜 진실 앞에 솔직하고 당당하질 못하는가. 설령 몰랐었다 해도 폭로 직후 우선 사실을 확인한 뒤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했어야 하지 않는가. 이 후보는 지금 검증의 거센 강물 한가운데에 있다. 그가 의지할 다리는 솔직함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