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와 음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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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8일부터 시작된 프로야구한국시리즈의 열기로 가을밤이 뜨겁다. 차안에서의 라디오중계는 집에 돌아와서도 텔리비전 화면으로 이어진다.
무엇을 하든 쉬운 것 하나 없는 일상 속에서 나름대로 성취를 위해 열심히 뛰다 보면 엄청나게 밀려드는 스트레스를 감당하기가 실로 벅차다.
어디 가나 북적거리는 사람들, 자동차로 넘쳐나는 거리…. 집에 들어와 쉰다는 것조차 여의치 않은 현실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고민과 스트레스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으리라.
스트레스 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스포츠는 다시없이 좋은 해결책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을밤 스포츠에 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한가닥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나는 평소 스트레스 해소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다고 여겨왔다. 하나는 여행·운동 등 몸을 움직이는 동적 해소책이고 ,다른 하나는 수면·음악감상 등 정적 해소책이다. 스포츠에 대한 국가적 지원과 홍보는 대단해 듣는 이들이 쉽게 호응하지만 음악감상을 얘기할라치면 고개를 갸웃거리기 일쑤다.
철학자 플라톤은 일찍이 인간 완성을 위해 체육과 음악이 매우 중요하다는 이덕론을 편 바 있다. 체육만 너무 열심히 하면 인간은 남성적이며 용감하고 파괴적이며 호전적인 성격으로 변하고, 음악에만 치중하면 여성적이고 신경질적이며 예민해지기 때문에 이 두가지를 조화있게 병행할 때 덕을 갖춘 인간을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서글프게도 플라톤의 이상과는 지나치게 거리감이 느껴진다.
체육시설은 많아도 문화시설은 손가락을 헤아릴 정도고, 일요일이나 휴일은 스포츠중계가 전파를 독점하다시피 한다. 그런가 하면 고전음악프로는 새벽이나 늦은 밤, 그야말로 모두가 잠든 시간에나 겨우 명백을 유지한다.
가을밤 운동장에서 거리로, 거리에서 가정으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프로야구한국시리즈의 열풍을 보며 음악에 젖어 고민과 시름을 달랠 날은 언제나 올까하고 생각해봤다. 【임웅균<성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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