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갈등·권력투쟁 얽혀 “혼미”/내전에 휘말린 그루지야 앞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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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군부 집권야욕 겹쳐 악화일로/11일 예정 총선이 최대 분수령
에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구소련 외무장관이 집권하고 있는 그루지야가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내전에 휘말려 있다.
해묵은 민족갈등과 신·구집권세력간의 권력투쟁이 맞물린 그루지야내전은 최근 외세가 개입한데다 내전을 이용,집권연장을 꾀하는 군부의 속셈까지 겹쳐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다.
지난 80년대 후반 페레스트로이카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본격화된 민족갈등은 지난해말 소련해체이후 더욱 가열돼왔다. 특히 1917년 볼셰비키혁명 이후 남·북으로 갈려 러시아와 그루지야에 각각 편입된 오세티아인들과 그루지야인·러시아인 등 지배민족의 대량유입으로 「자기땅」에서마저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아브하지아인들은 탈그루지야 독립투쟁을 전개,올해들어서만 최소 3천명의 사망자와 15만명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이와 함께 즈비아트 감사후르디아 전 대통령이 집권 7개월여만인 지난 1월 축출당한 뒤 그 추종세력의 반발로 비롯된 신·구집권세력간 대립은 양대세력 지지기반인 동부 공업지역(신)과 서부 농촌지역(구)의 지역대결양상까지 띠고 있다. 친감사후르디아세력은 한때 수도 트빌리시까지 진격했으나 지난 8월 정부군의 대토벌작전 이후 인근 아브하아지분리세력과 연대,권토중래를 노리고 있다.
게다가 카프카스산맥에 산재한 16개 민족들이 최근 「카프카스산악민족동맹」을 결성,아브하지아에 수천명의 용병을 파견하는 등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9만명에 불과한 아브하지아인들이 3백75만 그루지야인들에 맞서 무력투쟁을 벌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지원덕택이다.
러시아는 러시아대로 그루지야가 지난 3일 자국내 구소련군 자산을 몰수하고 15일까지 철수하도록 일방 결정한데 격분,무력응징 태도를 비치고 있어 양국의 정면충돌이 우려되는 실정이다. 러시아는 이미 분쟁지의 러시아인과 자산보호를 이유로 현지철도와 흑해연안을 장악하고 있다.
이처럼 얽히고 설킨 그루지야사태의 해결전망을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은 「전시대통령」이나 다름없는 텐기스 키토바니 국방장관의 야욕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강경파인 그는 정치적 해결을 주장하는 셰바르드나제 국가평의회의장을 따돌리고 내전을 유발해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셰바르드나제가 오는 11일로 예정된 총선을 통해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 부상할 경우 자신의 입지가 약화될 것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셰바르드나제의 협상노력으로 지난 7월 오세티아에 평화유지군이 배치되고 감사후르디아파와 협상이 진행되는 등 평화무드가 무르익는 가운데 정부관료 피랍사건이 터지자 키토바니는 곧바로 8월 인질구출을 핑계로 대대적인 감사후르디아파 소탕작전을 개시하고 잇따라 아브하지아까지 침공,아브하지아분리세력의 총력대항을 부추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루지야사태는 11일의 총선이 최대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셰바르드나제는 『이번 총선이 무산되면 그루지야는 대혼란에 빠지고 군사독재가 발호할 것』이라며 키토바니를 경계하고 있다. 그는 아울러 「총선무산=사퇴」 방침을 거듭 천명,이번 총선 실시여부에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어놓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키토바니의 의도대로 이끌려온 그동안의 상황으로 미뤄 셰바르드나제의 퇴진이 임박했으며 그루지야사태도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견해까지 내놓고 있다.<정태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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