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시〉최근 일간지 발표 완성도 높은 작품들 남다른 개성과 속 깊은 사유공감 얻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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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쉽게 읽히면서도 무게를 지닌 시들이 잇따라 일간지에 발표되며 본격문학과 더 많은 독자들 사이에 가교를 놓고 있다. 최근 발표된 송기원씨의 『치자꽃』 (중앙일보)과 황지우씨의『타르고프스키 감독의 고향』(한국일보)과 박라연씨의『고향가는 길』(동아일보)이 그것들이다.
송기원씨의 『치자꽃』은 시인이 어느 여름날 보길도로 나들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삼은 시다. 그 나들이에서 시인의 심사를 뒤흔들어 놓은 것은 섬 학교 교정에 잔뜩 핀 치자꽃이다. 그 꽃의 외양이 예뻐서가 아니라 그 꽃의 향기가 독특해 시인은 그 꽃에 그토록 크게 반한 것이다. 이는 물론 「그대여, 얼마나 오래 숨어살면서 그대에게 가는 길을 찾아야/그대는 치자꽃 향기처럼 나에게 풍겨올는지요」라는 시행을 제시하기 위한 예비 작업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대」란 특정한 개인을 가리키는게 아니고 시인이 갈구하는 존재요, 사회다. 그러니까 이 시는 그런 「그대」가 하루빨리 시인에게 와서 보길도의 치자꽃 향기처럼 시인을 황홀하게 해주길 바라는 마음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이다.
황지우씨의 시는 최근 이 시인이 어떤 심경에 빠져있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즉 이 시는 「내가 잠시 한눈을 팔면 내 삶 도처에 악취가 나고」라는 시행이 잘 시사하듯 서울을 버리고 광주에 귀의한 뒤 제자리걸음하고 있다는, 혹은 뒷걸음치고있다는, 의식에 시달리는 시인의 근황을 압축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불혹의 위험한 나이와 반복되는 갑갑한 일상과 앞길은 잘 보이지 않은 채 지리멸렬하기만한 세상 따위가 시인의 그런 의식을 조장한다는 것이야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게다.
박라연씨의 『고향가는 길』에는 시인의 섬세한 감각과 맑은 심성이 잘 배어 있다.
송기원씨의 『치자꽃』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풍경과 그곳에서 얻은 새로운 감정·사유를 정갈하게 요약하고 있다. 그러나 박라연씨의 『고향가는 길』은 송기원씨의 시와 달리 「사랑밖에 모르는 작은 아녀자」를 화자로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 겸손하고 소박한 화자는「제 손톱 온통 빠지는 줄 모르고」 목마르거나 배고프거나 외로운 산을「서늘하게 껴안아」주려는 「칡덩굴」같은 여인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이 시에서 시인의 이웃에 대한 무한한 사랑이 뛰어난 언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목격한 셈이다.
이처럼 이들의 시는 남다른 개성과 깊이를 간직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의 시는 최근에 범람하는, 가벼워서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사고로 치장한 시와 말을 다룰 줄 아는 약간의 재주에만 의탁한 시와는 판이하게 시란 시인의 치열한 삶의 부산물로서 삶의 풍요를 도모한다는 견해를 한층 강화한다.
김태현<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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