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기부의 변신은 시대적 당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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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안기부가 선거에 간여 않고 소위 정치 조정업무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는 것은 당연하며,오히려 많이 늦은 감이 있다. 대통령이 관권개입 없는 공명선거를 위해 집권당을 탈당하는 희귀한 조치까지 단행하는 판에 안기부라고 계속 구익에 젖어 선거에 끼어들고 정치공작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기부도 국가에 필요한 기구이고 지금껏 큰 일도 많이 했다. 그러나 이런 안기부의 긍정적 측면은 그동안 안기부가 저질러 온 허다한 부정적 사례로 하여 덮이고 잊혀져 안기부 자체가 국민으로부터 통째로 백면시 당한게 사실이다. 최근 기억만으로도 지난 총선때의 흑색선전 유인물 배포사건,연기군사건에서 드러난 「대책회의」 등이 있고 특정후보에 대한 정치탄압·인권유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검은 기록을 남기고 있다. 지금 정계 등에서 활약하는 지도층 인사 중에서도 상당수가 안기부의 정치탄압을 받은 사실이 있음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안기부 스스로 이런 검은 이미지를 씻기 위해 명칭을 중앙정보부에서 지금의 국가안전기획부로 바꾸는 등 노력을 한 적도 있지만 불행히도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안기부가 이렇게 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나쁜 정치 때문이었다. 안기부를 본연의 임무에 놓아두지 않고 필요한 일에 활용하지 않으면서 정권유지용,또는 정권의 애로사항 해결사용으로 악용한데서 일탈과 부작용을 양산하게 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안기부 역시 나쁜 정치의 피해자다.
늦었지만 안기부가 이제 그런 낡은 껍질을 벗고 국민과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위상을 모색한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정치개입을 않고 과학·기술·산업분야의 정보업무에 중점을 두기로 한 방향설정도 올바른 판단으로 생각된다. 오늘날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볼 수 있듯이 정보기관은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테크너크랫 집단이다.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기해 나가자면 각 분야에서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기에 수집·분석·관리해 나가지 않으면 안되고 여기에는 분야마다 고도의 전문능력을 필요로 한다.
지금 세계적으로 산업·과학·기술 분야의 정보경쟁은 갈수록 치열하고 우리나라로서는 특히 그 대처능력의 확보가 절실한 형편이다. 안기부는 앞으로 이런 분야를 담당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과의 대립·대결측면이 여전히 있는 만큼 그에 따른 대비업무는 안기부가 계속 맡을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번 안기부의 변신 노력과 함께 최근 군 내부에서 일고있다는 신뢰높이기 움직임 등을 주목한다. 이런 현상들은 우리사회가 차차 자리를 잡아가는 증좌로 권력에 의한 불공정 게임과 법과 순리에 어긋나는 여하한 강압적 메커니즘도 거부하는 민주화의 대세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안기부가 어떤 모습으로 달라질지 주시코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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