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다자간 안보협력/한­중수교로 공감대 확산(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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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미군 감축에 따른 힘의공백 메울 대안/집단협력 틀서 남북관계도 진전가능
다음은 지난 8월17∼19일 중국 상해에서 개최된 유엔군축회의에 참가한 공노명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의 아시아지역 안보협력문제에 관한 특별기고다.<편집자주>
냉전종식후 아시아지역에서 안보와 관련되어 자주 제기되는 문제중의 하나는 이 지역에서 과연 다자적 혹은 집단적인 안보협력이 가능한지를 묻는 질문일 것이다. 아시아에서의 지역안보협력에 관한 문제는 유렵안보협력회의(CSCE)라는 유럽에서의 성공적인 안보협력장치 구축 이후 그 적용가능성 여부가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며,이 지역에서의 미 군사력의 점진적 감축추세에 따라 앞으로 예견되는 힘의 공백을 메우고 정치·군사적 안정과 안전을 증진할 적절한 대안중의 하나로 제시되어 왔다.
○관련국들 방안모색
지난 1990년 여름 호주의 에반스외무장관과 캐나다정부가 각각 아시아 안보협력회의(CSCA) 및 북태평양안보협력대화(NPCSD)를 제안한 것이나 최근 일본정부가 아시아 안보문제에 대한 지역적 접근방법을 강조,아세안 확대각료회담(ASEAN PMC)을 아태지역 안보문제 토의의 장으로 전환할 것을 제안한 것 등은 이 지역의 안보협력 문제에 대한 관계국들의 접근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이제까지 아시아의 안보협력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주장만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유렵과 다른 정치·역사적 배경,공통된 위협인식의 결여,해양세력을 위주로한 비대칭적 전략환경 등으로 인해 아시아에서는 오히려 다자간 안보협력이 매우 어렵거나 그 여건이 아직 성숙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그리하여 지역안보협력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긍정적 검토보다는 부정적 시각이 국제적 논의의 주류를 이루어 왔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부정적 시각이 우세
그러나 최근 아시아지역이 이룩한 경제적 성장과 발전,그에 따른 역내국가간의 교류증대,그리고 지속적 경제발전을 위한 정치적 안정의 필요성 등으로 다자간 안보협력에 대한 새로운 긍정적 인식이 아시아지역 국가들간에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 8월17∼19일 유엔군축국 주최로 개최된 상해군축회의는 바로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대변하는 국제회의였으며 아·태지역 18개국에서 온 50여명의 참가자 대부분은 지역안보 증진·신뢰구축을 위한 다자간 대화체제 구축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를 나타냈다.
우선 회의의 기조연설자인 중국의 첸지천(전기침) 외교부장은 이제 아시아국가들이 지역안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효율적인 조치를 추구할 때가 왔다고 역설하고,유엔헌장의 준수·지역패권추구의 포기·상호선린 관계의 증대 군비증강의 배제·공동번영 및 발전을 아시아국가들이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다섯가지 원칙으로 꼽았다. 또한 유럽 스톡홀름 신뢰구축 협상시 미국대표를 지낸 제임스 굿비 전대사는 아시아지역의 안정과 항구적 평화를 위해서는 안보분야를 포함한 다방면에서 다자간 대화체제를 구축,지역국가들이 점진적으로 공통된 규범·행동원칙을 쌓아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수명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외에 일본의 도노와키 미쓰로군축대사는 아시아지역 안보협력을 위한 유럽모델(즉 CSCE)의 즉각적인 적용은 곤란하나 지역국가간의 상호신뢰 회복을 위한 다자간 정치적 대화체제의 탐색을 역설했으며,러시아의 유리 나자르킨군축국장은 다자간 해양협력을 통한 아태지역안보 증진방안을 제시했다.
이들은 다같이 지역안보 증진을 위한 다자간 대화체제의 구축을 강조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아시아지역에 이미 확립되어 있는 쌍무관계나 앞으로 전개될 양자협상의 중요성을 부정 또는 잠식하는 것은 물론 아니라는 점도 명확히 강조했다.
○쌍무관계 계속 존중
다자간 안보협력의 추구는 전통적인 양자관계에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두 접근방법은 오히려 상호보완적이라는 것이 회의참가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예를들면,미국과 영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틀속에서도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유럽공동체(EC)의 결성이 기존회원국가간의 다양한 쌍무관계를 전적으로 대체한 것은 아니다라는 점을 참석자들은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지역에서의 다자간 안보협력체제의 구축은 여러가지 장점을 지닐 수 있다. 특히 참석자중의 일부는 한반도의 예를 들면서 남북한간에 이미 체결된 양자협정은 다자협력의 틀안에서 국제적으로 보장될 수 있으며 남북간에 직접 해결이 어려운 과제는 다자간 대화의 틀을 통해 합의가 촉진될 수 있다는 지적을 아끼지 않았으며 참석자 대부분이 이를 수긍했다. 냉전종식 이후 국제질서의 재편과정에서 북한의 동북아질서 편입은 이 지역의 안정에 공헌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고 있다. 한중수교와 함께 다자간 안보협력에 대한 긍정적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최근 정세를 감안할때 남북한 쌍무관계를 보완하고 그 진전을 촉진할 수 있는 2중적 접근방법의 중요성은 그 어느때보다도 절실히 강조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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