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만화 「서점판매시대」개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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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서점판매를 겨냥한 성인용 장편만화가 잇따라 출판되고 있다.
대본소 중심에서 서점 중심으로 유통구조를 전환,성인용 장편만화를 일반출판물 장르속에 끌어들이려는 시도다.
사회과학출판을 전문으로 해오던 도서출판 풀빚과 한길사,그리고 문예물을 주로 내던 민예사등이 이같은 움직임에 앞장서고 있다.
성인만화의 단행본 출간붐은 과거에도 여러차례 일었으나 서점유통은 번번이 좌절됐다.
70년대초 고우영씨의『일지매』『임꺽정』『수호지』와 강철수씨의『사랑의 낙서』등이 등장하면서 불기 시작한 성인만화붐은 당시 성인만화를 신문 가판대까지는 올려 놓았으나 저질·외설 시비에 휘말린 꼴에 당국의 철퇴를 맞고 거리에서 조차쫓져났다.
80년대 후반에는 이현세씨의 『공포의 외인구단』등 대본소만화들이 성인들에게까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는데 편승,성인용 장편만화의 서점 상륙이 재차 시도됐으나 실패했다.
만화는 저질이며, 사서 보는것이 아니라 빌려 보는 것이라는 해묵은 인식의 벽을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길사·풀및 등의 만화시장 진출은 사회과학도서의 부진에 따른 활로 개척의 몸부림으로볼 수도 있지만,서점유통을 통한 만화시장이 어느 정도 자리장았다는 시장조사 결과에 근거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동안 독서경향이 가벼운 읽을거리 중심으로 바뀌고, 대본소를 찾는 독자의 절반 이상이 성인들로 대체 됐으며, 만화대본소가 전자오락실과 비디오에 밀려 감소 추세라는 점 등이성인만화의 서점유통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아동만화와 명랑만화의 서점유통이 이미 정착된 상태이고 도서출판 풀빚이 지난해 선보인 시대극화『장길산』(백성민)이 비교적 호조를 보이는 것이좋은 예다.
이에 힘입어 풀빚은 최근 김주영씨 원작을 이두호씨가 극화한『객주』전10권을 완간했고,갑오농민 전쟁 1백주년이 되는 94년에는 이 사건을 다룬 또 하나의 대작을 내놓을 계획이다.
한길사도 「한길 아트비 전」이라는 계열사를 신설,지난달에『사군여 새벽을 노래하라』(이현세)를 내 놓은데 이어 이현세씨의 『아마겟 돈』,허영만씨 의 단배『오! 한강』등 대본소에서 인기를 모았던 작품들을 서점용으로 재편집해 졔속 출간할 예정이다.
민예사메서 서점용으로 리바이벌시킨『신의 아들』(박봉성)도 80년대 후반 대학생층을 중심으로 대본소를 통해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기업 스포츠만화다.
최근 선보인 세작품은 재미도 뛰어나지만 남녀 주인공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벗어던지기에 급급한 이른바 성인극화들과는 달리 내용도 건전하다.
한길사 사장 김언호씨는『만화책이 정상적인 서점루트로 유통돼야 발전한다』고 강조한다. 도서출판 풀빛 대표 나병식씨도『하나의 작품으로서 공개적인 서점 유통망을 통해 떳떳하게 승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만화가 하나의 독립된 예술장르로서 설수 있을지, 만화가츨판영역의 한 부분을 차지할수 있을지 여부가 서점유통의 성패에 달려있다는 얘기다.
성인용 장편만화의 서점유통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고는 하나 만화의 역기능에 대한 우려가 높은데다 만화계 주변의 창작여건이 취약해 아직은 많은 문제점이 남아 있다.
또 성인용 장편만화가 대개5권에서 30권까지로 구성,책구입 부담이 엄청나게 무거운것은 당장 극복되어야 할 장벽이다.
성인용 장편만화가 첩첩이 쌓인 난관을 어떻게 뚫고 나아가 새로운 황금시대를 열지 주목거리다.<최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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