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한 나를 납치 당했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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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자유를 찾아 사랑하는 처와 5남매를 놔두고 둘째아들과 간신이 월남한 나를 국군에 강제 납치돼 남하했다며 송환을 요구하고 있는 북측의 주장은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을 무산시키기 위한 생트집이다…』
8·15이산가족 고향방문단 일원으로 42년간 헤어져있는 북녘의 부인 전봉숙씨(80)와 2남3녀를 만나보기 위해 방북을 신청했던 한국 청십우 사회복지회 이사장 장기려 박사(82·청십자병원장)는 북측에 의해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이 사실상 무산 되었다는 소식에 큰 실망과 함께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했다.
『사상도 이념도 모르는 가족들을 42년 간이나 헤어지게 만든 6·25 전쟁을 도발한 김일성이 역사적 책임을 지고 심판을 받아야 만한다….』
특히 장박사는 남북이산가족 고향방문 사업을위한 양측의 실무자 대표접촉이 진행되고 있던 지난7월에 북측이 방송을 통해 이인모씨와 강제 납치되어 남하한 자신을 소환하라고 요구했다는 보도에 대해『일고의 가치도 없는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강제 납치설을 부인했다
장박사가 월남한 것은50년12월3일 오전3시쯤..
당시 김일성 대학의 의대교수로 평양의대병원 2층수술실에서 국군장병등 응급환자들을 밤새 수술하고 있던 중 병원3층에 폭탄이 떨어졌다.
혼비백산한 장박사는가족들이 생각나 집으로 달려갔으나 둘째아들 가용(56·현 서울대 의대 해부학교수) 만이 폭음에 놀라 떨고있는 것을 데리고 후퇴하고 있던 국군트럭을 세위 올라타 남하한 것이 부인 전씨와 완용·신용·성용·인용·진용등 다섯 남매와 이산하게 된것이다.
어린 둘째아들과 단둘이 월남한 장박사는 부산에서 무료진료등 인술을 베풀면서 독실한 신앙으로 가족들과의 이산의 아픔을 달래 오면서 하루삘리 남북통일이 되어 북녘에 두고온 가족들과 재회할 수 있기만을 기다려 왔었다.
8·15 이산가족 고향방문사업이 활발하게 추진되어 42년간 기다려온 가족들과의 재회가 실현될수 있을 것으로 큰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장박사에게는 고향방문 무산소식은 더할나위없는 실망감을 안겨주었을 뿐이다.
『가족과 생이별한 사람이 나뿐만이 아니지만 가슴속 깊이 뭉클 치밀어 오르는 이산의 설움을 감당못해 기도로 눈물을삭이고 있다…』
춘원 이광수의 대표적 소설『사랑』의 남자주인공 안빈의 실존인물로 널리 알려지기도 한 장박사는 부산에서 40여년동안 복음법원·청십자병원·고신의료원을 세우는등 사랑과 믿음의 인술 봉사활동을 펴면서 지난 79년에는 막사이사이상 (사회봉사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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