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상표 수출 축소의 역리(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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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경제와 산업의 자주성은 어느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대외의존 탈피의 지연이 국가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심각하게 따져볼 때가 됐다. 남의 기술과 부품·소재로 짜맞춘 제품에 외국기업의 상표를 붙이고 거기다 마키팅까지 남의 판매조직에 의존하는 산업체제를 무한정 끌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경제와 산업의 자주성을 높여나가는 것이 쉬운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것이 거꾸로 가는 사태만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산업활동의 자립도를 총체적으로 표시하는 마땅한 지표가 마련돼 있지 않고 또 그것의 변화방향에 대한 정밀점검과 종합대책 수립에 아무도 특별한 신경을 쓰지 않는 상황속에서는 대외의존을 오히려 조장하는 정부정책이나 기업전략 조차도 속수무책으로 방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더구나 개방·국제화·지구촌이라는 표현들로 상징되는 대외환경의 변화로 인해 「상호의존」이 아닌 일방적 의존의 심화까지도 손쉽게 정당화 되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현재 우리 산업의 자립기반은 산업활동의 규모에 걸맞지 않게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강화되고 있다는 증거는 좀처럼 찾아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생산제품의 상표사용에 있어서는 오히려 자립화에 역행하는 변화가 발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외국 주문자의 상표를 붙인 이른바 OEM 수출의 비중이 자동차·가전제품·섬유·신발 등 주요 수출품목에서 일제히 높아졌다는 보도는 해당부문의 수출산업 활동을 좌지우지 하는 외국 상표권자의 재량권이 그만큼 더 커졌음을 뜻한다. 불과 한해 사이에 일어난 변화치고는 그 속도가 너무나 빠르다. 90년에 62%였던 자동차 수출의 자기상표 제품비중이 1년새 42%로 낮아졌고 가전제품은 35%에서 22%로,신발은 5%에서 2%로 급락추세를 나타냈다.
남의 기술·상표·판로에 얹혀 지내는 신세로 진정한 의미의 산업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자주성을 상실해 가는 산업체제를 간과한채 수출의 일시적인 회복만을 보고 낙관에 빠지는 것은 진지한 정책당국의 자세가 아니다.
우리가 도입해 쓰는 기술·상표·부품들은 그 수준이 고급인 것일수록 공급자가 독과점 지위를 누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수요자인 우리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그것을 도입할때 막대한 독점이윤을 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로 인해 독자기술과 독자상표 개발분위기가 크게 훼손되게 마련이다.
현행의 산업정책과 수출정책속에 이같은 경향을 부추기는 시책들이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가를 따져보는 일은 정부가 할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산업의 「자주성 향상」을 생산성 향상과 맞먹는 정책목표로 내걸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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