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리 내세운 간섭줄이기 전략/「새정부 경영안」 발표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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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기업의 불만·이해만 대변” 시각도
전경련이 14일 「경제계가 바라는 새정부의 국가경영」안을 내놓게 된 배경에는 6공정부내내 거듭된 정·재계간의 갈등이 다음 정부에서 재현되어서는 안된다는 재계의 위기의식이 깔려있다.
더이상 「정치논리」로 재계가 희생될 수는 없으며 우리경제를 지탱해온 수출경쟁력마저 무너져내리는 상황에서 차기정부는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경제논리」를 시급히 회복하고 「수출위주의 경제성장전략」으로 회귀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사실 6공기간 내내 재계는 『정치권이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재벌을 해체시키려 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왔으며 정주영대표의 국민당 창당과 최근 이른바 신산업정책을 둘러싼 공방에서 불신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이에 따라 재계 수뇌부는 더이상 물러설 수는 없다는 판단아래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던 대정치권 물밑 로비에서 벗어나 이제 떳떳하게 논리를 앞세워 재계의 입장을 밝히자』는 공감대를 은밀히 다져왔다.
이번 건의서가 연말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작성됐고 이를 각당의 대통령후보에게 공식전달하겠다는 것도 이같은 재계 홀로서기 전략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건의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차기 정부는 재정적자를 무릅쓰고라도 확대재정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과 「정부는 규제위주에서 봉사위주로 행정의 원칙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대목이다.
그동안 전경련이 『정부는 민간에 대해서는 허리띠를 졸라매라 하고 자신들은 과소비(재정확대)를 한다』고 비난해온 것과는 정반대의 입장인 셈이다.
이같은 입장 선회에는 내수침체 속에서 확대재정은 곧 경기부양으로 이어져 기업에 득이 되고 기술투자·사회간접자본 확대 또한 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이므로 결코 손해가 아니다는 재계의 계산이 깔려있다.
봉사위주로 행정의 원칙이 바로잡혀야 한다는데는 『이제 정부가 민간기업에 일일이 간섭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재계의 입장과 『돈(정치자금)은 돈대로 내고 욕을 먹지는 않겠다』는 불만이 동시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번 건의안에서 정견련은 차기정부에 여러가지 주문을 하면서도 『기업의 문제는 자율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해 지나치게 자신들의 불만과 이해관계만을 대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편 이번 건의안 작성에는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장이기도 한 선경그룹 최종현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차기 전경련회장에 최 회장이 굳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건의안의 골격도 최 회장이 잡아 곳곳에 최 회장의 평소 지론이 스며들어 있으며 전경련은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 건의안 초안을 사전에 주요 그룹 총수들에게 회람시킨 것으로 알려졌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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