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주민 “군인은 모두 무장폭도”/전택원특파원 프놈펜을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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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가족 반이 킬링필드서 희생/호텔 레스토랑엔 유엔 관계자들로 흥청/“일 지원 새 시장 노리는줄 알지만 필요악”
녜와리씨(45·여) 가족의 절반은 킬링필드의 유골전시관에 있다.
크메르루주시대의 대량살육으로 남편과 두아들을 잃고 자신과 두딸만 남았다. 그것도 5년동안 밀림에 숨어 풀뿌리로 연명한 끝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캄보디아 문제해결의 난점 가운데 하나는 국민적 화해가 어려운데 있다고들 한다. 10여년에 걸친 내전을 통해 쌓여온 응어리와 대량살육의 희생은 지금 세대가 살아있는한 풀어질 성격이 아니라는 근거에서다
그러나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거의 크메르루주세력 참여가능성에 대한 녜와리씨의 태도는 의외였다. 크메르루주가 선거를 통해 집권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캄보디아인들은 평화정착을 위해 그들의 정치참여를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크메르루주 대표 키우 삼판이 프놈펜에 돌아왔을때 발생했던 폭력시위 사태는 헹 삼린 정권이 조작한 것이었다고 녜와리씨는 말했다.
그같은 사태를 지켜보면서 『내전이 또 다시 일어나지나 않을까』하는 우려와 함께 평화협상이 깨질까봐 조마조마 했던 것이 자신뿐 아니라 프놈펜 시민들의 공통된 심정이었다는 설명이다.
정치가들의 세력다툼에 언제나 희생물이 되어온 캄보디아인들은 궁극적으로 평화 이외에는 어떠한 해답도 없다는 생각이다.
『평화,평화…』라고 되풀이 하고 있는 그녀의 말속엔 오랫동안 굶주림과 공포에 시달리는 것보다 「짧은 고통만 있는」처형이 오히려 부럽게 보였던 자신의 극한적인 경험에서 얻은 절실함을 담고 있었다.
녜와리씨는 그러나 『4개 정파의 어느 정치지도자,어떤 군인도 캄보디아인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고 못박는다.
미·중·태국·베트남 등 외세를 업고 형성된 4개 정파가 자력으로 정치통합을 이루거나 평화를 구축할 능력이 없는데다 유엔캄보디아 과도행정기구(UNTAC)의 무장해제 작업을 거부하는 크메르루주뿐 아니라 「모든 군인은 무장폭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크메르루주가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있는 것도 정치적 이유보다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데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지적된다.
태국 군부·은행·기업가들과 결탁해 자체 지배권인 파일린 지역에서 산출되는 루비·사파이어·목재를 반출,연간 1억달러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크메르루주는 캄보디아 체제의 「부자집단」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들은 태국과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를 유지,쉽게 소멸당하지 않을 근거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크메르루주 일부 지도자의 총선 참여여부와는 별개로 무장세력은 『앞으로 7년간 지탱할 무기를 확보하고 있다』면서 결코 자발적으로 이를 포기하지 않을 태세다.
이와 관련,UNTAC는 각 정파에 압력을 가해 통합을 유도하는 한편 무장세력에 대처할 유일한 주역으로 캄보디아인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인구 1백만명의 작고 가난한 프놈펜시에 밀어닥친 1만여명의 외인집단이 불러일으키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UNTAC 산하 유엔평화유지군(PKF)과 산발적인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크메르루주가 이들을 겨냥해 프놈펜시에서의 테러활동을 벌일 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극장·댄스홀 등에서는 내국인들에 대한 검문검색이 행해지고 있다.
한편 이같은 우려와는 아랑곳 없이 호텔·레스토랑 등 불빛이 화려한 곳은 예외없이 「UNTAC」관계자들로 밤 늦도록 흥청거린다. 이와 함께 쓸만한 주택들의 집세가 부쩍 올라 부르는게 값이다.
80년대초에 비해 2백50배나 오른 환율도 최근 1년사이 다시 폭등하는 추세다.
관료들의 부패와 함께 조직화된 매춘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캄보디아 재건을 위해 유엔의 지원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유엔요원중 군인들이 절반이 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현직 공무원인 삼리터씨(37)는 UNTAC 활동이 캄보디아 경제부흥으로 구체화 되지 않은 상황에서 「낮에는 나무 그늘에서 잠만 자는」PKF 군인들의 역할에 회의를 보인다.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아직 지난 69년 자체경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캄보디아의 경제복구에는 앞으로 20억∼30억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본이 30% 정도를 분담하기로 결정된 것 외에는 아직 구체적 재원마련이 요원한 실정이다.
『일본이 우리를 돕는 것도 캄보디아를 그들의 새로운 시장으로 삼으려는 것쯤은 알고있다. 그러나 우선 급한 것이 외부로부터의 지원이다.』
삼리터씨는 「현명한 정부」만 들어선다면 이같은 기회를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현명한 정부」가 출현할 것으로 믿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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