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파키스탄|5천년 전 유적 그대로 "신비의 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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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는 흔히 잉카제국의 문화나 중국의 역사가 신비스럽다고도 하고 놀라기도 한다. 그러나 남미의 잉카유적이나 중국대륙의 장대한 역사 못지 않게 인류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또 하나의 역사현장이 파키스탄의 가장 큰 도시 카라치 부근의 모헨조다로에서 서서히 베일을 벗고있다.
역사의 현장을 가볼 때마다 으레 느끼는 것이지만 모헨조다로도 5천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생활상과 도시설계기법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놀랍고도 가슴 뭉클하다.

<복잡·다양한 문화>
힌두교를 믿는 인도를 사이에 두고 동서로 나뉘어있던 파키스탄은 지금부터 20년 전인 72년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면서 현재에 이르고있다.
서 파키스탄, 즉 지금의 파키스탄은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중국·인도 등을 국경으로 점하고있어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문화와 겹치고있다. 우리 나라와 달리 수도 이슬라마바드는 인구 20여만명의 작은 도시이고 오히려 카라치는 인구 5백여만명이 넘는 국제적 도시다. 따라서 파키스탄에 입국하게되면 거의 모든 국제선항공기가 세계4대 문명의 발상지인 인더스문명, 즉 모헨조다로와 가까운 카라치에 내리게된다. 모헨조다로는 카라치에서 6백㎞가량 떨어져있다.
인류의 4대 문명발상지를 가본다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을 떠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혜안과 안목을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파키스탄의 최대도시 카라치에서 항공기로 약 1시간 정도 인더스강을 따라 북으로 올라가면 5전년의 역사발자취를 품고있는 모헨조다로의 유적이 나온다.
인류의 조상이 살다간 발자취가 반만년 가까이 지난 금세기에 들어서야 신비의 모습을 드러내 세상을 놀라게 한 것이다.

<인더스문명과 교류>
이집트의 절대군주였던 파라오시대나 메소포타미아문명이 꽃피웠던 시기에 모헨조다로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이들과 문물교류를 이루었던 흔적도 볼 수 있어 경외심마저 느끼게 한다.
이곳의 전문가들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발생했던 문명이나 티그리스문명이 인더스문명과 어느 정도 문화를 공유하며 교류했다고 전한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형태와 도로망·주거용 주택·목욕탕·회의용 시설 등 완벽한 도시기반시설이 갖추어져있고 건물은 벽돌로 지어져 오늘의 주거용 건축과 별로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안다면 저절로 신비로움에 휩싸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집마다 욕탕 갖춰>
더욱이 오·폐수처리를 위한 완벽한 하수도시설은 5천년 전에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사려 깊은 위생관념을 짐작케 해준다. 하수도시설 하나만 보아도 오늘날의 하수도시스팀을 뺨치게 한다. 오수를 버리면 자동적으로 도랑을 타고 내려가 돌로 만든 정화시설을 거치게 돼있고 일정한 양이 넘으면 이것을 버리게되는 현대식 정화시스팀,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모헨조다로를 번영으로 이끌던 당시 유럽을 포함한 다른 지역은 간신히 석기시대를 벗어난 때라고 보면 이런 문화생활을 누렸다는 게 여간 감탄스러운 것이 아니다.

<옷감 짜던 기구도>
유적의 주택구조를 살펴보면 구운 흙벽돌을 사용했으며 방과 거실이 분리되어 있고 침대와 욕탕도 갖추어져 있다.
이곳 유적지와 통하는 길은 카라코람산맥을 거쳐 파미르공원, 그리고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비단길이 된다. 농경과 목축이 이들의 주요생계수단이었고 이 길을 통하여 외부와 물자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이들은 목화를 재배, 옷감도 짰다고 하는데 그때 쓰던 기구나 물건들이 곳곳에 널려있어 선인들의 숨결을 전하고 있다.
모헨조다로의 유적은 아직도 많은 신비로움에 휩싸여있고 미처 발굴되지 않은 것도 많아 궁금증을 더해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여러 가지 상형문자들도 발견되었으나 아직까지 해독되지 못하고 있다. 모헨조다로의 문명이 왜 멸망되었는지 추측만 무성할 뿐 원인이나 이유를 아직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의 사학자들은 아마 서북에서 침입한 아리아족 때문이거나 인더스강이 범람해 파괴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파키스탄에 가서 모헨조다로를 보지 않는 것은 로마에 가서 콜로세움을 보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가 있다. 그만큼 모헨조다로는 관광지를 넘어 우리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교훈을 주는 기행지였다. 김호진<투어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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