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원리」로 중심옮긴 DJ/경제관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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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기 도약론펴며 기술자립 강조/분배우선 후퇴… 대권전술 시각도
김대중 민주당대통령후보가 요즘 내놓은 「경제상품」을 보면 그의 변신폭이 상당함을 느낄 수 있다.
그의 경제이론을 한창 듣고 나면 새로운 발상을 가진 관변이코노미스트의 주장과 크게 다를게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될 정도다.
김 대표의 경제관·경제정책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경제정의,형평이나 성장의 몫나누기에 비중을 두었다. 그러나 이제는 경제의 시장원리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는 최근 질이 좋고 가격경쟁이 있는 물건을 외국에 내다파는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바쁘게 다니는 토론회,강연회에서 그는 줄곧 『제3차대전인 경제대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철저한 시장경제를 발전시켜 고부가가치,고기술제품을 만들어 팔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를 위해 『과학기술개발에 국운을 걸고 디자인개발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쉴새 없이 기술입국을 강조한다. 심지어 그는 지난달 31일 소속의원 세미나에서 『14대 국회에선 하루도 빠짐없이 「기술」「기술」이란 얘기가 나와야 한다』고 할 정도다.
14대 국회에선 정치논리가 더이상 경제논리를 압도해선 안된다는 다짐의 표현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대표는 대통령이 되면 5년 임기동안 2천억달러를 수출해 우리나라를 세계경제 8강(G8) 대열에 올려놓을 수 있다고 호언하고 있다.
「신종합상사 대한민국」을 구상하는 뜻에서 때로 김 대표가 종합상사 대표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그는 중소기업중심의 경제재도약론을 펼친다. 『소품종 대량생산시대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의 시대로 바뀐 상황에서 발빠른 중소기업을 경제발전에 앞장 세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의 중소기업중심경제는 예전처럼 대기업과 충돌하는듯한 접근방식이 아니라는데서 주목을 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역할분담을 해서 대기업은 자본·기술집약적인 중화학·첨단분야에 전념하고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을 제패해야 한다는 것』으로 상호보완성을 부각하고 있다.
87년 대통령 선거전 막판에 『대기업이 국민과 중소기업을 짓누르는 그런 횡포를』(여의도집회)이란 발언을 기억하는 사람이면 그의 역할분담론은 새롭다.
그의 중소기업 육성론의 모델은 패션사업이다. 그는 이탈리아 못지않게 우리 패션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유명디자이너들과 토론회를 가질 예정이다.
김 대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대기업만으론 안된다』는 것이지 결코 반재벌입장이 아님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는 6일 당정책팀과 토론모임에서 한 참석자가 재벌을 때리는 쪽의 정책안을 내놓자 『그러면 안된다. 밀어줄 것은 적극 밀어야 한다』고 일축했다는 것. 어떤 한분야에서 초일류기업으로 키워야 한다는게 그의 대기업관이라는 얘기다. 사석에서 그는 중소기업 고유업종에서 손뗀 일부 재벌의 행적을 칭찬하고 있다. 그의 경제관의 변화는 박정희·전두환시대의 경제를 재평가하는데서도 느껴진다. 지난 5일 부산·경남당원들과의 간담회에선 『경제발전에 있어 군인정치가 효과가 있을 때도 있었지만…』이라며 「개발독재형 경제모델」에 대해 무조건 깔아뭉개지 않았다.
박정희시대의 경제를 특권층만 살찌게한 경제라고 몰아쳤던 과거 시각과는 확실히 다르다.
요즘 그는 자신의 저서 『대중경제론』을 가필,보완하고 있는데 제목부터 『세계8강(G8)으로 가는 길』로 바꾸려 한다. 대중경제론은 미 하버드대에서 『대중참여경제론』(83년)이란 이름으로 출판되어 애착이 가는 저서지만 「대중」이란 어휘가 계층적 접근론의 인상을 오래 심어줬다고 보고 책명까지 바꾸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자세를 이념적 이미지의 우경화로 해석하려는데 대해 김 대표는 구식의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자본주의·사회주의가 중도통합하는 새로운 세계사의 흐름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의 수정된 경제관이 대통령직을 향한 마지막 도전을 고려한 전술적 후퇴라는 시각도 없는 것은 아니다.
그의 주장대로 통화량을 줄이면 중소기업이 제일먼저 자금압박을 받는 이율배반적 성격도 있고 2천억달러 수출의 이렇다할 청사진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6공 경제각료출신인 민자당의 중진의원은 『김 대표의 경제시각 변화는 주목할만하다』며 『그러나 소득분배·농어촌 부채탕감·진보적 노동법개정 주장 등 정치논리를 앞세웠다가 이제 시장원리를 강조하는 변신의 배경이 불투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 대표는 이런 시각에 구애받지 않고 그의 경제수정노선을 계속 선보인다는 계획이다.<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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