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치의학전문대학원 체제의 출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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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신입생 선발 시험 일정과 과목 등 전형요강이 확정됨으로써 우리나라 대학교육도 전문대학원 시대로 접어들었다. 전문대학원은 선진국들이 일찌감치 의.치의학은 물론 법학과 경영학 분야에서 실시 중이다. 이 교육제도는 학부의 다양한 전공자를 해당 부문의 전문가로 키워 국가 차원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다. 벌써 대입의 의대와 치대 입학 경쟁 못지않은 '의.치의학 전문대학원 고시'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적성은 무시한 채 수능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부모나 교사의 권유에 따라 의대나 치대에 진학하는 열기가 4년 정도 늦춰진 것에 불과하다는 우려가 결코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미트(MEET), 치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려면 디트(DEET) 시험을 각각 치러야 한다. 대학가에서는 이공계 3~4학년이 대거 이들 시험을 준비 중이고, 학원가에는 전문학원이 등장해 이공계 출신 졸업생과 회사원 등 수강생들로 만원이다. 얼마 전 열린 전문대학원 입시설명회에는 한국과학기술원과 서울대 공대 재학생, 석.박사 학위 소지자들까지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고 한다.

2004학년도 대입에서도 이들 전문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기초학문을 배울 수 있는 자연계 학과의 경쟁률이 강세를 보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상황이니 이공계 교수들이 이공계 인력 육성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의.치의학 전문대학원제 도입 백지화를 요구하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의.치의학 전문대학원을 실시하면 대학에서 여러 가지 전공을 한 교양인과 전문인의 특성을 골고루 갖춘 의사를 배출해 의학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전문대학원 준비 추세라면 산업.연구인력을 양성하는 이공계의 공동화가 앞으로 더욱 심화할지 모른다. 정부는 이공계 학부가 전문대학원 준비기관으로 전락해 과학기술인력 충원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가인력수급 종합계획이 정말로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