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고삐 늦춰선 안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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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물가불안에 대한 태산같은 걱정을 안고 맞이했던 금년의 1·4분기가 지나갔다. 지난 석달동안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6%로 집계됐다. 연말의 물가상승요인을 이듬해의 부담으로 떠넘겨온 과거의 관례라든가,5%에 육박했던 작년 동기의 상승폭에 비추어 볼때 적어도 수치상으로 나타난 금년 1·4분기의 물가동향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3월의 총선을 거치면서 당초 예상했던 심각한 선거인플레를 면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물가불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총선의 물가후유증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데다 소비풍조가 아직도 도처에서 산견되고 있으며 내수경기도 충분할 만큼 진정돼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구나 지하철요금·상수도요금·우편료·택시와 철도요금 등 각종 공공요금의 인상이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형편이다. 연말의 대통령선거가 물가불안을 또 얼마나 부추길 것인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물가의 고삐는 지금부터 더욱 강력하게 죄어 나가야 한다. 그동안 정부는 기회있을 때마다 물가안정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고 통화운용과 물가행정을 통해 물가잡기 노력을 기울여오기는 했지만 그 정도로 물가안정기조가 다져지기는 어렵다. 2·4분기를 맞아 정부는 먼저 연초에 올 경제성장률을 7%로 낮춰 잡으면서 성장의 희생까지를 감수키로 한 안정 우선의 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런 정신에서 보면 선거철의 각종 선심공약과 개발사업 발표가 금년도 경제운용원칙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난 것인가를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
앞으로 매달의 물가를 관리해 나가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에는 국민들사이에 꽤 널리 퍼진 인플레 기대심리를 하루빨리 걷어내고 물가안정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조치가 마련돼야 한다.
업계 전반에 닥쳐올 봄철의 노사간 임금협상에는 작년의 물가상승폭과 함께 올해의 예상물가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이때문에 고물가→고임금의 악순환을 차단하는데 있어서도 인플레심리의 제거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물가불안을 그대로 두고는 서민생활안정은 물론이고 산업경쟁력 강화도,국제수지 개선도 공염불로 끝날 뿐이다. 정부는 한층 강도높은 물가안정 의지의 표시로 우선 올 물가억제목표를 5% 정도로 과감하게 하향 조정해줄 것을 제언한다. 작년과 금년의 1·4분기 실적만을 비교하면 그렇게 못할 이유도 없다. 과잉의욕으로 비칠 정도의 적극적인 대응없이는 우리경제의 고질화된 인플레구조는 척결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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