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베르사유가 놀이동산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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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한 해 4000만 명 이상이 찾는 프랑스의 대표적 관광지인 베르사유 궁전의 개조 사업을 놓고 현지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이 사업을 추진하자 '돈벌이를 위해 역사 유적을 입맛대로 개조한다'며 여론이 들끓고 있다.

프랑스 문화부는 올 초부터 베르사유 왕궁 정원의 '귀족 뜰'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우선 베르사유 궁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던 루이 14세 기마상을 철거했다. 그 자리에 대리석 벽을 쌓아올리고 그 위에 다시 철창살을 세울 계획이다. 그러면서 그 안쪽에 귀족 뜰을 만들 계획이다. 루이 14세가 건축할 당시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문화부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귀족 뜰의 경우 왕족과 일부 귀족만이 출입할 수 있었던 곳이라 대혁명 당시 시민들이 권위주의의 상징이라며 울타리를 때려 부숴버렸다. 이를 다시 만든다는 것 때문에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미술사 학자인 디디에 리크네는 "정부가 관광객 눈요기용으로 350만 유로(약 43억7000만원)를 들여가며 문화 파괴에 앞장서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보존 가치가 있는 역사의 흔적을 정부가 나서 폐기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베르사유 궁정이 거대한 공사장이 돼버린 모습에 관광객들도 실망하고 있다. 한 20대 여자 관광객은 "왕궁 앞뜰이 아파트 공사장처럼 어수선한 데다 왕궁 건물이 모두 공사 중이어서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이 없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궁전에서 계속되는 대중가수들의 콘서트도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6월부터 왕궁에서는 3개월 내내 콘서트 일정이 잡혀 있다. 에어.피닉스.앨릭스 고퍼 등 국내외 대중음악가들의 공연이 계속된다. 9월 말까지 매 주말 밤 분수 쇼가 펼쳐지고 영국 국립발레단 등의 공연도 잡혀 있다.

이 때문에 유적지의 정신을 훼손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학자들은 "베르사유는 이제 왕궁이 아니라 공연장이나 디즈니랜드 같은 놀이동산이 돼 버렸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정부는 "문화유적을 복원하고 4000만 관광객에게 다양한 문화행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베르사유=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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