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에 윤석화"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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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연극계에 윤석화 바람이 불고 있다.
윤석화 모노드라마『딸에게 보내는 편지』(극단 산울림)가 20일 공연의 막을 올리자마자 관객들이 몰려들어 공연 첫날 첫 공연(20일 오후3시30분)에 좌석과 보조 의자가 매진되고 입석까지 꽉 차는 이변이 일어났으며, 연일 매회 공연 좌석(1백5석)의 두 배가 넘는 관객이 몰렸다. 아무리 인기 있는 공연이라도 통상 처음 며칠간은 좌석을 채우기 힘든 연극계 현실에서 이 같은 초장의 두 곱 매진 사태는 이상 열기임이 분명하다.
더욱이 이번 공연은 윤석화 모노 드라마(1인극)이기에 바람이 윤석화라는 배우 개인에게서 비롯됨이 분명하다. 모노 드라마라는 형식 자체는 배우 한사람만 등장하기 때문에 다양한 등장 인물서로간의 갈등과 대립이라는 연극 고유의 재미가 적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노드라마는 거의 전적으로 출연 배우 한사람의 인기에 의존하게 된다.
이번 작품 역시 모노 드라마인 만큼 극적으로 특별히 뛰어난 구성은 아니다. 제목 그대로 35세 밤 무대 가수인 어머니가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한 딸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10가지 충고를 하는 내용이다.
『친구를 잘 골라야해』『행동에 앞서 결과를 생각해라』등 일견 진부한 내용들이다. 시종일관 좁은 방 안에서 혼자 중얼거리는 단순한 상황 설정이기에 지루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윤석화는 단순한 줄거리를 꾸려가면서도 90분간 객석을 사로잡는다.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혼자 춤추고 떠들다가 딸을 생각하고 자신의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금방 심각해지면서 눈물을 주루룩 흘리기도 한다. 스스로 억제하기 힘든 감정은 노래로 발산하기도 한다.
먼저 관객들은 마치 여가수의 방을 몰래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곧이어 대부분 여자인 관객은 관찰자의 마음을 떠나『모든 여성은 어머니이거나 딸』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어머니이거나 딸인 마음에서 같이 웃고 울며 배우와 한마음이 된다.
열정적인 여자 윤석화는 열정을 감추고 살아야하는 우리나라 여자 관객의 속마음을 거칠 것 없이 대변한다. 90년 모노드라마『목소리』에서 버림받으면서도 끝까지 사랑을 잊지 못하는 젊은 연인의 마음을,『푸쉬케 그대의 겨울』에서는 아버지라는 권위적 존재 때문에 이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딸의 마음을,『그대 아직도 꿈꾸고있는가』에서는 사회의 냉대 속에서도 자신과 자식을 지키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대신 외쳤다.
4월26일까지로 예정된 공연이지만 산울림 소극장(334-5915)측은 윤석화가 미국 유학을 떠나는 여름까지 최대한 연장 공연할 것을 미리 준비중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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