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험! 이색지대] 1박2일 요가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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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매운 추위가 찾아왔던 지난주 토요일(6일). 중부고속도로 서청주 나들목을 벗어나 속리산(충북 보은) 품으로 접어든다. 추위 때문인지 차창 밖 공기가 더욱 상쾌하다. 지금 찾아가는 곳은 속리산이되 사실 속리산이 아니다.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찾기 어려웠던 곳이 이번 목적지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청주시내를 지나 몇 차례 좌회전 우회전을 거듭한 뒤 기다리던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샨띠와남 요가 수련원'(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하판리). 폐교된 2층짜리 초등학교(옛 북암분교)를 보수해 지난해 봄 문을 연 이곳. 한참 전에 떨어졌을 낙엽이 넓은 운동장 위를 뒹굴고 있다. 깊은 산속이다.

◇ 만남, 그리고 차 향기

토요일 오후 3시 건물 2층의 널찍한 요가실.

짐을 풀고 편안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얼굴들이 바닥 위에 네모 모양으로 둘러앉았다. 1박2일을 함께 지내게 될 사람들이다. 50대 어른부터 서너살짜리 아이까지 모두 20여명. 어린 자녀 한두명을 데리고 온 엄마들이 많이 눈에 띈다.

"다들 잘 오셨습니다." 이곳의 요가 강사 4명 중 한명인 유관숙(49.여)씨가 영지 차를 우려내 한잔씩 돌린다.

샨띠와남. 산스크리트어인 '샨띠'(평화)와 인도 남부 타밀어인 '와남'(마을), 두 단어가 합쳐진 이름이다. 그러니 '평화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곳에선 주말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요가.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요가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전혀 없는 가족들도 참여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자리다.

다소 어색한 분위기에서 한명씩 자기 소개가 이어진다. '나'를 찾으러 온 곳에서 '나를 소개해야 한다'니. 수련실 내에 차향이 그윽하게 퍼진다.

◇ 아사나, 몸의 편안함을 찾아

곧 이어 요가 아사나를 배우는 시간. '아사나'는 원래 '흔들림이 없는 바른 자세로 오랫동안 편안하게 앉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아사나를 배우기 어려운 꼬마들은 요가 강사 중 한명을 따라 방을 떠난다. 그들만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자, 양말은 모두 벗으세요. 양말을 신고서는 아사나를 하기 어렵습니다."

강사 조건희(35)씨가 진행을 맡았다. 모두들 일어서 수련실 한쪽 벽에 설치돼 있는 철틀 앞에 선다. 아사나를 하기 전 경직된 몸을 풀어주는 순서가 먼저다. 루프형으로 된 밧줄 한쪽을 철 틀에 걸고, 반대쪽을 손에 쥐거나 손목에 두른다. 다양한 스트레칭 동작이 이어진다. 힘겨운 동작을 할 때면 간혹 신음이 터진다.

하지만 이는 준비 운동일 뿐. 20여분의 스트레칭 이후 다시 마룻바닥 위에 앉았다. 저마다 매트 한장씩을 깔고 강사의 안내에 따라 이런 저런 자세를 잡았다.

평소 쓰지 않던 근육을 쓰도록 요구하는 자세이기 때문에 부자연스럽고 약간은 고통스럽다. 10여 가지 동작을 해보았을까.

잠깐. 아사나는 '편안하게 앉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

"아사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장시간 또는 며칠 동안 정지된 상태에서 명상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세로 전해져오는 것들이죠. 익숙해지면 이보다 편안한 자세가 없습니다. 입문자들에게는 낯설기 때문에 다소 고통스러울 뿐입니다."

강사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두시간여의 아사나 연습 뒤 시장기가 몰려왔다.

◇ 산속에서 맛보는 풍성한 채식 식사

오후 6시 저녁 식사 시간. 1층의 교실 중 하나가 식당이다.

첫날 저녁 메뉴는 청국장.냉이 튀김.콩나물 파래 무침.과일 샐러드.김 튀김. 푸짐한 양이 나오지만 모두 채식이다. 금욕적인 생활을 기본으로 하는 요가 수련의 특성상 이곳에선 육류를 음식 재료로 쓰지 않는다(2일차 아침에는 현미 찰떡.호박죽.사과, 점심에는 능이버섯국.숙주나물 볶음.브로콜리.생미역줄기.팽이버섯 튀김.부추 겉절이 등이 식탁에 올랐다). 구영회(49.여)씨 등 이곳 강사들이 직접 만든 음식이다.

폐교하기 전에 썼던 책.걸상. 이것들이 식탁이요, 의자다. 책상 여러 개를 붙인 식탁에 옹기종기 둘러 앉는다. 두시간여의 힘겨운 수련을 함께 해낸 뒤라 분위기가 밝아졌다. 서로서로 밥을 푸고, 음식을 나른다. 부모와 떨어져 있었던 꼬맹이들. '고무 찰흙을 가지고 놀았다'며 작품을 자랑하느라 한참 어수선을 떤다.

◇ 호흡.명상.그리고 '다르샨'

오후 8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이곳 해루 원장과 수련생이 다르샨을 갖는 시간이다 (인도에서 10년 정도 인도 철학과 종교.요가 등을 공부했다는 그는 '신비감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도 나이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르샨'은 '요가 수련자들이 영적인 교감을 나누는 대화'라고 했다.

'요가는 무엇이고, 왜 하며, 요가를 생활 속에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를 주제로 한 강의가 먼저 진행됐다. 산스크리트어가 다양하게 등장하는 이 강의는 선입견과 달리 그리 어렵지는 않다. '요가는 자기의 이기심(利己心)을 극복해 참된 나를 찾는 것이며, 참된 나를 찾는 방법 중 하나가 명상인데, 명상은 편안한 자세(아사나)와 호흡을 바탕으로 한다'는 게 요지다.

한시간여의 강의와 질의 응답 뒤 호흡 훈련에 들어간다. 방석을 깔고 앉아 가부좌를 튼다.

"5초간 들이마시고, 6초간 숨을 내뱉습니다. 숨을 내뱉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갑니다. 잡념이 생기면 숨을 내뱉으며 숨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숨소리에 집중하다보면 잡념을 쫓아가지 않게 됩니다. 이제 시작합니다."

눈을 감았다.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려니 생소하다. 시간을 염두에 두니 다소 숨이 가빠진다.

그러나 거칠던 숨이 조금씩 차분해진다. 어느덧 자신의 숨소리 외에는 들리지 않는다. 아랫배가 따뜻해진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자, 됐습니다. 눈을 뜨세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20분이 지났다'고 했다. 그 짧은 시간이 이토록 길었다니. 눈을 감고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흘러간 시간. 그 시간이 조금씩 길어진다면 언제인가 '정말 나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자리에 든 시간이 오후 11시.

그리고 다음날 오전 6시부터 명상.산책.아침식사.아사나 훈련.점심 식사 등이 순서대로 이어졌다. 1박2일의 프로그램은 일요일 오후 2시쯤 끝났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보은=성시윤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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