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야 할 대통령 지방공약(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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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의 연두 지방순시와 각종 공약발표에 대해 야당과 중앙선관위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김대중 민주당총재는 3일 기자회견을 통해 노태우 대통령이 총선때까지 지방순시를 중지하고 임기이후의 사업에 관한 공약은 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또 이날 중앙선관위 자문회의에서는 대통령의 연두순시와 사업공약 언급이 공명을 저해하는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매년초 해오던 대통령의 일상업무일 뿐이라고 반박했고,중앙선관위원장은 선관위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기대는 크고 정부에 대해 행사할 힘에는 한계가 있어 곤혹스럽다는 표정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야당과 청와대의 주장엔 각기 일리있는 측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문제가 왜 이 시점에서 쟁점이 되며,어느쪽 주장이 국민의 공감대를 얼마나 얻고 있는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선 대통령의 통상업무라도 현저히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면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편이 낫지 않나 생각된다. 노대통령은 연초 남은 임기중 국내정치엔 초연하고 경제회복과 공명선거 실시에 전념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때문에 대통령의 활동과 발언에 정치적 시비가 일고 공명성의 문제가 제기된다면 이를 과거에도 해오던 일상업무라는 한마디로 묵살해선 안된다고 본다. 아무리 관례가 그렇더라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필요하면 바꿔야 할 것이다. 노대통령은 이미 민주화와 더불어 권위주의시대의 통치관례를 상당폭 바꾸지 않았는가.
노대통령이 발표한 일련의 사업공약이 남발이냐,또는 실현가능성이 있느냐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못한 사태다. 말할것도 없이 대통령의 말에는 천근의 무게가 있어야 한다. 책임지지 못할 일은 아예 하지 않는게 좋고,한 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없는 실천계획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지역공약중 몇가지는 책임지기가 어려워 보인다. 예컨대 동서고속전철건설,전철 분당선의 수원연장,서해안 개발사업,서울시 지하차도 건설 등은 지난번 대통령선거때 공약의 재탕이거나 타당성 검토가 충분히 안되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실 대통령과 각부 장관,시·도지사의 공약성 사업계획에 대해서는 경제부처 관계자중에도 재정규모를 감안할 때 차기정권 아래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상황에선 야당이 지방사업공약의 정략적 이용을 비판하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게 없다.
물론 이같은 비판이나 일부의 여론 때문에 대통령이 임기말에 해야할 일상업무를 태만히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리 순수한 의도라도 국민일반에 오해가 널리 퍼진다면 업무수행의 선후를 조절하는 여유는 필요하다고 본다.
적어도 많은 돈이 들 지역공약이나 장기실천계획이 필요한 공약은 피하는게 총선 후보자들에게도 본이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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