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도 농민도 "FTA 공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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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법무법인 '광장'의 통상법 전문가인 백종관 변호사 등 5명은 지난해 말부터 2주에 한차례씩 모여 자유무역협정(FTA)에 관해 공부해 왔다. 요즘엔 한.미 FTA 타결로 관심을 끌고 있는 투자자-국가소송(ISD) 제도를 연구 중이다. 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의 국가정책으로 인해 피해를 보았을 경우 국제 중재기구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도록 한 제도. 백 변호사는 "이제 법률시장 개방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며 "미국 법뿐 아니라 국제 중재기구의 성격과 역할, 과거 판례를 분석함으로써 ISD 소송에 대비하자는 게 모임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국외대 박요한(27.국제통상학과4)씨는 20여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한.미 FTA 세미나를 만들기로 했다. '농업 분야 개방의 여파' 'FTA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 '교육 분야 개방 유보에 대한 분석' 등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일 계획이다. 박씨는 "FTA가 가져올 경제환경 변화에 대해 정확하게 인식하고 싶다"며 "FTA 공부는 취업을 하려는 대학생들에게 필수과목이 됐다"고 말했다.

한.미 FTA를 공부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FTA 발효가 될 무렵 경제 현장을 뛰게 될 대학생들, 직접 외국 경쟁 상대와 싸워야 할 변호사 등 전문가 그룹, 피해가 예상되는 농민 등이 FTA를 능동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 "알아야 대비한다"=가장 눈에 띄는 모임은 전국 1000여 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대학생정치외교연구회'. 한.미 관계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루던 이 모임은 최근 한.미 FTA에 집중하고 있다. 얼마 전엔 김종갑 전 산업자원부 차관을 초빙해 '한.미 FTA가 한국 젊은 세대에게 주는 의미와 영향'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김정훈(26.고려대 정치학대학원) 대표는 "FTA의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철저히 대처할 수 있다"며 "정부가 20~30대 젊은층에게 FTA의 긍정적 효과를 제대로 알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농민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지난해 3월 발족한 농업CEO연합회는 5월 초 현대인력개발원과 공동으로 '농기업 글로벌 전략'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상황돌파과정' '심화과정'으로 구성된 이 세미나에는 현재 80여 명의 농민이 참여의사를 밝혔다. 일곱 차례에 걸쳐 농산물 개방 관련 연구 모임도 열 계획이다. 정운천(53) 회장은 "1989년 키위 시장이 개방됐을 때 다 쓰러졌었지만 우리 정서에 맞는 '참다래'라는 이름과 전략으로 다시 일어섰다"며 "개방을 위기로만 보지 말고 공격적으로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예비 축산인 홍성철(22.건국대 축산경영학과3)씨의 경우 인터넷에 '철이의 터치 스토리'란 만화를 올려 네티즌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스스로 공부한 쇠고기 수입 문제를 논리적으로 다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전문가 그룹도 나서=메이저 국내 로펌인 태평양은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소속 변호사로 구성된 연구팀을 가동하고 있다. 미국의 법 체계와 이미 법률시장을 개방한 독일.일본 등의 사례를 분석한다. 태평양의 오양호 변호사는 "법률 시장이 개방될 경우 업무 제휴가 적합한 미국 등 해외 로펌이 어디고, 어떤 방식으로 제휴가 가능한지를 살펴보고 있다"고 전했다.

천안의 나사렛대 교직원 최재곤(49)씨는 올해 시작된 '쌍용2동 동민대학'에서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미 FTA 특강을 마련했다. 도농 복합 도시인 천안의 특성상 FTA가 농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최씨는 "13일 경희대 성극제 국제대학원장을 초청해 주민들과 함께 강의를 들을 예정"이라며 "2~3차례 FTA 특강을 더 주선하겠다"고 말했다.

권호.구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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