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진출 과당경쟁 “조짐”/주요기업들 앞다퉈 방북 추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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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차관지분 확보위해 교역실적 쌓자”
대북진출을 둘러싸고 국내업계 사이에 과당경쟁이 빚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요 기업체 회장이나 사장들이 서로 뒤질세라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방북을 서두르는가하면 북방진출의 실적,특히 그동안 비밀에 부쳐졌던 대북교역실적을 부풀려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업계는 또 단기간내 대북직교역을 대폭 확대시킨다는 방침을 정하고 북경·동경 등에서 북한관계자와의 접촉에 힘을 쏟고 있다.
이같은 움직임은 3월로 예정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측이 요구할 것으로 알려진 차관제공에 따른 자사지분의 확보를 위한 것이다.
업계는 김우중 대우 회장이 가져온 합작투자보다는 정부의 대북차관제공과 그에 따른 이익이 훨씬 현실적이고 짭짤할 것으로 보고있다.
즉 구소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북차관의 일정비율은 전대차관이 될 가능성이 크고 소비재나 플랜트의 회사별 비율은 대소 소비재차관에서처럼 「기존교역실적」에 따라 정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대차관은 물건을 실어내고 정부에서 돈을 받는 「앉아서 장사하기」식인데다 대북차관 또한 적지 않은 규모일 가능성이 커 종합상사들은 차관액수를 저울질하는등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이때문에 종합상사들은 이미 지난해 북경에서도 한바탕 힘겨루기를 했다.
문선명 통일교 교주의 방북을 위해 김달현 북한 정무원부총리가 북경까지 영접나왔을때 국내 종합상사들은 실력자 김씨와 줄을 달기위해 서로 달려드는 바람에 한바탕 추태를 연출했다.
업계는 북한이 이때 남쪽의 대북열기를 감지하고 김회장의 방북을 추진,정부의 공식창구와 민간회사로 대남접촉창구를 이원화시켜 이익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면 왜 업계들은 과당경쟁을 벌여가며 대북접촉을 선점하려하는가. 그것은 수익좋은 업종을 골라잡아 합작할 수 있고 경협차관도 자사에 유리하게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번 동구와의 접촉때도 그런 일이 벌어졌고 한소·한중 경제협회장 자리를 놓고 재계의 실력자끼리 힘겨루기를 했던 것도 같은 때문이다.
이같은 경험을 갖고 있는 업계로서는 「마지막 시장」인 북한과의 접촉에서도 필사적일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수출여건이 불투명한 올해 종합상사들로서는 북한과의 교류에서 「통일에 기여했다」는 상징적인 의미 뿐만 아니라 얼마만큼의 실적을 올리는가가 최대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민간교류합동위원회를 발족시키려 하는등 대북교류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과당경쟁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동남아나 베트남까지 진출하는 마당에 값싸고 질좋은 노동력에다 거리도 가까운 북한을 외면할 수 없지 않는가」라는 경제논리를 꺾을 수 없고 만약 북한의 초청장을 개별적으로 받은 업체에 제동을 걸 경우 「대우는 보내고 왜 우리는 막느냐」는 불만을 누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벌써부터 실무진을 다그치는등 대북경쟁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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