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미디어 홍보(정치와 돈:7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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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달력·카드 퇴조 테이프 유행/선거법 바뀌어 미리 만든 것 쓰레기장으로/주간연재
국회의원들이나 출마지망생들은 세밑이 되면 거금을 들여 연하장과 달력을 만들어 지역주민에게 뿌리는 일이 큰 행사로 정착돼 왔다.
그러나 이번 세밑엔 의원회관 주변의 이런 세시풍속도가 퇴조하는 대신 호화판 의정보고서와 녹음테이프·비디오 테이프를 활용한 홍보물의 제작과 배포에 열을 올리는 새모습이 선보였다.
○만부인쇄 폐기도
새로 개정된 국회의원선거법이 기부금지대상으로 달력을 명백히 못박고 있어 의원의 이름이나 사진이 박힌 달력발송작업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
민자당의 초선 K의원은 선거법 개정작업이 진행될때 자신의 이름이 인쇄된 탁상용달력 1만부를 주문했었으나 달력배포가 금지되자 『돈 1천만원이 순식간에 날아가버렸다』고 한숨을 지었다.
그러나 영세민이 많은 지역구의 의원이나 예비후보들은 해마다 돌려온 달력이 주민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사실을 잊지 못해 일반 기업이 제작한 달력들을 얻어 대신 나눠주는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어떤 의원들은 지역내 중소업체에 뒷돈을 일부 대주고 달력을 만들게해 자신의 운동원이 돌리도록 하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고 한 보좌관이 귀뜸했다.
인사장·연하장도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 들었다.
인사장 돌리기는 지역 유권자이외의 친지나 당원에게는 가능하게 돼 있으나 선거를 앞둔 사전선거운동 단속이 엄격해 대폭 숫자를 줄여가는게 일반적 현상.
수도권 지역의 K의원은 우편엽서 반만한 크기에 새해인사와 내년 달력이 촘촘히 앞뒤로 새겨있는 연하장 4만부를 찍어 돌렸는데 단가 20원,총 8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고 소개.
그러나 김종필 민자당최고위원은 예년에 지역 당원등에게 4만여장을 보냈던 연하장을 올해는 1만장으로 축소했고,김덕룡 의원은 지난해 5만장에서 5천장으로,유돈우 의원은 2만5천장에서 8천장으로,신하철 의원은 7만장에서 1천장으로 각각 줄였다고 비서진이 밝혔다.
보통 장당 단가는 2백∼4백원으로 치는데 김최고위원의 경우 세밑마다 연하장발송비용으로 2천만원정도 나갔으나 올해는 5백만원으로 줄었다고 한다.
○의정보고서 큰 몫
의원들이 이같이 연하장을 줄일 수 있게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귀향·의장보고회때 관련 인쇄물과 녹화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개정 선거법 38조3항 신설).
이에 따라 의정보고서는 더욱 화려해지고 수도 많아지게 됐으며 녹음테이프와 비디오 테이프를 활용한 홍보물이 예년 연하장의 자리를 대신하게 됐다.
김최고위원을 비롯,이종찬 김용채 김덕룡 서청원 박관용 황병태 김정수 의원등 여당의원들과 야당의 김영배 양성우 의원 등이 의정보고서를 이미 만들어 배포했거나 뿌릴 예정. 또 상당수 의원들이 고급아트지에 시원스런 사진을 실어 마치 고가상품의 멋진 선전물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제작 단가는 대량주문으로 4백∼7백원수준.
김최고위원은 4.6배판 크기의 아트지로 16쪽 컬러화보형식으로 꾸몄는데 JP어록과 부여박물관 건설등 지역사업을 소개했다.
JP의 의정보고서를 직접기획,제작한 보좌관 김석야씨(방송드라마작가)는 『깨알같은 활자로 채워진 의정보고서보다는 화보중심의 시각성이 강조되는 방향으로 홍보물이 바뀌고 있다』고 말하고 5만부를 유권자에게 돌린 총경비가 2천만원이었다고 밝혔다.
김최고위원측은 선거때에도 다른 지역 지원유세로 못내려갈 경우를 예상,JP의 말과 모습이 담긴 녹음테이프·VTR테이프를 제작할 것을 검토중이다.
양성우 의원도 ▲정주영 신당설 ▲경제·물가문제 등을 추궁한 국회발언을 녹음한 의정보고테이프를 5천개 제작,지역구에 돌렸는데 『복덕방에서 유권자들이 모여앉아 이 테이프를 듣는 모습을 자주본다』고 자랑.
양의원은 개당 제작비용이 실비 4백원정도밖에 안들어 투자에 비해 효과만점의 홍보방법이라고 말했다.
○값싸고 효과도 커
경기지역의 한 의원은 1천6백만원을 들여 5만부의 의정보고서를 호별투입한 것외에 자신의 국회발언모습을 찍은 두종류의 비디오테이프 5백개를 당원교육용으로 돌렸다.
편집비용 1백만원과 복사테이프 개당 5백원등 모두 1백50만원이 들었다고 한다. 또 의정보고서의 호별 투입에는 50명 당원에게 일당 3만원씩 주고 2∼3일이 소요돼 직접 배달비용이 4백만원정도 들었다고 했다.
의정보고서는 의원만 할 수 있게돼 있어 경합자인 원외위원장들의 불만이 대단하다.
의정보고서에는 그동안 활동실적만 실을 수 있고 선거공약은 게재할 수 없게 돼 있음에도 상당수가 이를 어기고 있다.
원외위원장들은 의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작비용과 우표값이 많이 들고 홍보효과는 낮은 연하장을 수만장씩 찍어 돌리는 수밖에 없다고 불만.
따라서 당원이 아닌 일반 유권자에게 연하장이 전달된 증거를 갖고 상대방이 고발할 가능성이 그만큼 더 많다고 현역의원중심의 선거법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전영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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