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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로 '황사 테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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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4월 최악의 '황사 테러'를 생생히 기억하는 한국인들은 올해 황사가 얼마나 심해질지 벌써 걱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황사의 유익함을 조목조목 늘어놓은 천다허(陳大河) 중국 기상국장의 궤변(본지 3월 15일자 12면)이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다.

인터넷에는 "황사가 그렇게 유익하다면 황사 속에 든 중금속과 유해물질을 혼자 다 마셔라"라는 격한 글도 올라왔다.

황사가 실어나르는 광물질이 촉매작용을 해서 비를 내리게 하고, 플랑크톤과 새우에 이어 물고기로 연결되는 먹이사슬을 형성한다고 설명했다. 지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중국과학원 정회원으로서 과학기술 논문 인용 색인(SCI)급 논문 56편을 발표한 자연과학도가 거짓말을 했을 리도 없다.

그러나 그는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했다. 황사의 악영향과 사회적 비용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천 국장은 "황사가 없었다면 중국과 중화(中華)민족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그가 태어난 곳은 황사가 빈발하는 간쑤(甘肅)성 황토(黃土)고원이다. 자기 고향을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싶었는지 모르겠으나 피해국 국민의 감정은 도외시했다.

중국은 1979년에 3월 12일을 식수절(植樹節)로 지정해 나무심기를 독려해 왔다. 지난해에는 중국인의 45%가 나무를 심었다. 그러나 심는 속도 못지 않게 사막화가 빨리 이뤄진다. 사활을 걸고 나무를 심는 것 외에 달리 대안이 없다. 이런 마당에 천 국장은 "사람이 황사를 막으려는 것은 과학 법칙에 어긋난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민간 단체인 '한.중 미래 숲'을 이끄는 권병현 전 주중 한국대사는 2002년부터 한국 청소년들과 함께 중국에서 나무를 심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한반도에 가장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는 네이멍구(內蒙古) 쿠부치 사막에 방사림(防砂林)을 조성하고 있다. 강수량이 적어 생존율이 낮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대대손손 산을 옮겼다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중국 고사성어다. 그런 중국의 고위 당국자가 자국의 불모지 녹화에 앞장선 한국인들에게 불가항력(不可抗力)을 논하는 것은 큰 결례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