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Blog] '여배우 결혼 공식'은 깨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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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인기 절정인 톱스타, 그것도 여배우의 결혼은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자신의 연인인 양 흠모했던 이들이라면 한숨 나는 일일 테고, 관계자 중에는 "이젠 가전 CF 후보군"이라며 주판알을 튕기기는 이도 있을 겁니다. 은근한 구설을 기대하는 악의적 소수도 있겠지요.

전도연씨의 결혼으로 영화계엔 과년한 미혼의 톱스타가 또 하나 줄었습니다. 전씨는 예외적인 경우가 될 것이라 300% 확신하지만, 여배우들에게 결혼은 종종 가혹한 전환점이 되곤 했습니다. 아예 은퇴하기도 하고, 결혼생활이 파국을 본 후에야 비로소 '돌아온 누님'이 돼 무르익은 연기를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행복하고 안정적인 결혼 생활이 족쇄가 되는 경우도 많았죠. '주부 배우'라는 일상의 냄새가 신비감을 떨어뜨리며 활동 폭을 좁히기 때문입니다. 결혼 이후 남자배우에게 일어나는 변화와 비교하면 천양지차입니다.

흥미로운 건 여배우의 결혼에 나타나는 어떤 패턴입니다. 여배우의 결혼은, 세간의 기준으로 가장 성공적인 결혼의 신화를 완성합니다. 한마디로 '시집 잘 갔다'는 게 뭔지 보여준다는 거지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결혼의 요체는 타고난 미모를 자산 삼은 젊은 여성의, 사회경제적 최상류층으로의 편입입니다. 여배우의 결혼을 바라보고 소비하는 대중의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중의 사랑과 돈과 명예, 그리고 빼어난 미모라는 육체적 축복까지 거머쥔 여배우들에게 결혼과 관련해 어떤 문화적 파격을 기대하는 건 무리일까요. 적령기가 되면 결혼하고, 당연히 활동을 줄이고, 그들의 신랑감이란 한결같이 '미국 유학파, 재력가의 자제, 호남형 사업가'라는 판박이 신상명세를 공유하며 "의외로 소탈해서 끌렸다"는 모법답안용 사랑 고백, 좀 물리지 않습니까.

결혼하지 않고 자유연애로 분방한 에너지를 뿜어내거나, 아니면 나이와 계층, 고정관념들을 무력화하며 자신의 결혼 자체를 인생 최고의 드라마로 만드는 멋진 여배우, 어디 없을까요.

한때는 양성애자라는 소문에 휩싸였고 아버지뻘 되는 빌리 밥 손튼을 포함해 두 명의 남자와 결혼했으며, 세기의 미남 브래드 피트와 결혼 대신 동거하면서 제3세계 아이들을 입양해 다국적 가정을 꾸린 안젤리나 졸리가 갑자기 떠오르는군요. 물론 한국에서 안젤리나 졸리로 살아가기가 보통 녹록한 일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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