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 살해사건 재수사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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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찰이 오빠를 범인이라고 단정해 수사를 종결한 서울 마포 어린이살해·방화사건에 대해 많은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범행을 자백했다고 발표된 권모군(10)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그밖에도 증인,참고인,사건직전까지 함께 있었던 친구,담임교사 등의 진술내용이 경찰발표와는 크게 차이가 나고 있다.
또 현장검증조차 하지 않았고 당연히 확보되었어야 할 증거물이 없으며 범행 정황을 입증할 논리의 구성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는등 수사 자체에도 허다한 허점들이 발견되고 있다.
간단히 말해 경찰의 수사가 너무도 허술했고 자백 이외에는 권모군을 범인으로 지목할 아무런 결정적 증거가 없는 셈이다. 그런데 이제 그것마저 유도신문에 의한 것이라고 부인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 사건에 대한 수사가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되어야 함은 너무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경찰이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권모군이 형사미성년이 아니라면 재판과정에서 경찰의 수사내용과 제기된 의문점들이 다시 검증될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모군은 형사미성년이기 때문에 별도의 소송이 제기되지 않는한 그런 재판의 기회도 없이 경찰의 수사 종결만으로 사건처리는 끝나 버리게 되어 있다. 따라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경찰 및 검찰의 재수사가 불가피한 것이다.
뒷날 우연한 기회에라도 진짜 범인이 밝혀질 경우 경찰의 신뢰실추를 생각해서라도 경찰은 기존 수사결론에 얽매여선 안된다. 또 백보를 양보해서 이제까지의 수사에 대한 확신에는 변함이 없다 하더라도 수사내용에 대한 허다한 의문점과 반박이 제기되었고 수사상의 허점들이 드러나고 있는 이상 이에 대한 해명을 위해서라도 재수사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권모군이 형사미성년이라는 점은 감안할 사항이 아니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것과 권모군이 처벌을 받느냐,안 받느냐하는 문제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며 한 점의 의혹도 없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야말로 수사당국의 기본적인 책무인 것이다.
이대로 수사가 종결된다고 해서 권군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형사미성년이어서 형사처벌만 면제되는 것일뿐 경찰 발표대로라면 권군은 일생을 누이의 살해자라는 멍에를 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형벌과 인권유린이 어디 있겠는가. 만약 경찰 수사가 잘못된 것이라면 우리들은 진실을 밝혀 진짜 범인을 응징하기는 커녕 도리어 한 어린이에게 엄청난 죄악을 저리른 셈이 된다.
현 단계에서 지레 단정할 것은 아니겠으나 범죄와의 전쟁 1주년을 앞두고 경찰청장이 수사현장을 방문해 사건해결을 독려한바 있는등 경찰이 수사를 서둘렀다고 느껴지게 하는 정황도 있다.
누구에게나 실수는 있을 수 있고 수사당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뒤늦게라도 진실만 밝혀낸다면 그것이 명예는 될지언정 한때의 실수가 허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수의 인정이 참된 용기요,명예일 것이다. 우리는 경찰과 검찰이 선입견을 버리고 재수사에 나설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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