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시험제 "엉거주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택시운전사의 자질을 높인다고 89년이후 교통부가 추진해온 택시기사 자격시험제가 법상 제도만 만들어 놓고 시행을 못하는 모순에 빠져 행정의 난맥을 드러내고 법의 권위만 떨어뜨리는 결과를 빚게 됐다.
이는 교통부가 장기적인 상황예측이나 사전준비를 소홀히 한채 시행을 서두른 때문으로 개정 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규칙이 27일 공포됨에 따라 택시업계가 운전사 채용을 놓고 혼란에 빠지는등 어이없는 소동까지 빚어지고 있다.
시행규칙에 따르면 27일 이후 택시회사가 신규 택시기사를 채용하는 것은 무자격자를 위법채용하는 것이며 따라서 20만원의 과징금을 물도록 돼있다.
또 취업희망 운전기사는 법상 무자격 취업인데다 언제 자격시험을 치르고 시험에 떨어질 경우 취업이 무효화될지 몰라 불안정 취업을 하게 됐다.
이때문에 전국 택시연합회나 시·도지부 교통부에는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있으나 『곧 지침이 마련될 것』 이라는 막연한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시행착오=교통부의 택시기사 자격시험제도 도입은 첫단추가 잘못 끼워져 마지막 단추까지 엇끼워진 탁상행정의 사례.
4월 입법예고때도 택시업체의 만성적인 구인난으로 인해 자격시험 실시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예상했으나 어쩔수 없이 공포절차를 거쳐 27일 발효시켰다.
이는 89년 12월30일 개정한 자동차운수사업법에 실시시기까지 못박은 사업용자동차 종사자에 대한 자격시험 조항이 신설됐기 때문에 실시를 연기하거나 보류하려면 모법인 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하지 않는한 불가능했기 때문.
교통부는 「공포만하고 실시는 미루는 것으로 하자」 는 내부 결정에 따라 보도자료에서도 자격시험 부분은 빼놓았다.
현재 택시운전사 부족현상은 전국 1천8백46개 업체에 취업한 운전자가 17만3천여명으로 적정인원 17만3천여명에 3만여명 (17·7%) 이나 부족하고 서울과 주요 6대도시에서는 더욱 심해 부족률이 20·8∼21·3%나 된다.
또 택시 운휴율도 전국평균 18%에 이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노동강도에 비해 임금수준이 낮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수입이 좋은 덤프트럭·고속버스·전세버스로의 이직이 택시운전기사 부족을 가중시키는 것으로 교통부는 분석하고 있다.
◇도입배경=택시의 뺑소니사고·운전기사의 손님 성폭행등 범죄행위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관계부처·기관에서 갖가지 대책을 제시했고 주무부처인 교통부는 궁여지책으로 자격시험제 도입을내놓았다.
당시 교통부의 설명은 자격제 실시는 한편으로 택시기사에 대한 자질향상을 꾀할수 있고 다른한편으로는 택시기사에 대한 효과적인 제재방법이 될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통부는 이에 따라 자동차운수사업법을 개정, 관계조항을 신설하면서 세부사항을 정하는 시행규칙 개정이 6개월쯤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실시시기를 90년 7월1일로 부칙에 못박았다.
그러나 시행규칙 개정은 엉뚱하게도 소화물일관수송법 (화주가 원하는 장소에서, 집하 배당하는 제도) 등록기준을 둘러싼 업계의 이해상충으로 개정작업이 늦어져 처음부터 지키질 못할 법을 개정하는 공수표가 됐다.
◇문제점=구인난이라는 현실적인 난관이나 행정관청이 위법을 선도한다는 비난외에도 택시기사에 대한 자격시험 실시는 법의 형평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화물차량·버스등 사업용차량 종사자중 유독 택시기사에 대해서만 운전면허와는 별도의 자격증을 받도록 하는 것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셈이라는 것이 법률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적정수준의 수입보장·복지대책등 택시업계의 경영수지와 직결된 택시기사의 자질향상등 서비스개선을 반대급부도 보장되지 않은 자격시험을 통해 꾀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행정편의주의라는 비난을 피할수 없다.
이와 함께 현실적인 고려에서 기존 운전기사에 대해서는 시험이라는 검증절차도 없이 자격을 인정한다는 논리상의 모순과 함께 서울에만도 7만8천9백명이나 되는 운전기사에게 자격증을 발급해주기 위해서는 서울시에서 다른 업무를 팽개치고 하루 4백장을 기준, 7개월15일이나 걸린다는 행정낭비도 외면할수 없는 문제점이다.

<엄주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