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연방 와해,위험요소 많다(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혁명은 일단 추진력을 갖게되면 주도세력의 시간표를 앞질러 상황이 줄달음질치는 경우가 많은 법이다. 그러한 상황의 급진전이 쿠데타 실패이후의 소련에서 일어나고 있다.
특히 두드러진 예는 소련연방을 구성해온 각 공화국들의 이탈현상에서 나타나고 있다. 사회주의혁명이라는 정치·군사적 구심력이 약화되면서 억제되어온 비러시아계 민족주의가 각 공화국에 대해 강력한 원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힘의 결과로 소련연방을 구성해온 15개 공화국중 열곳에서 독립을 선언하거나 그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우리는 상당수의 공화국들,특히 발트3국이 소련혁명 세력의 강압에 의해 병합되었던 역사의 왜곡을 바로 잡는다는 점에서 이 와해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도록 소련 개혁파는 물론 바깥세계도 가능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제공산주의운동이 그 종주국에서 허물어져 내리고 있고 소련의 개혁이 민의를 추진력으로 삼고 있는 대세라면 강압속에 묶여있던 민족자결원칙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원칙을 현실에 적용함에 있어 우리는 이 변화가 몰고 올지도 모르는 한가지 중대한 위험요소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곧 민족주의의 주권화가 세계적으로 미칠 파장이 자칫 국지분쟁 내지는 전쟁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현실적 우려다.
소련연방의 민족단위 공화국이 분리독립을 하게 될 경우 세계 각처에 널려있는 국경분쟁,소수민족 분쟁들을 자극할 가능성은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가장 큰 위협을 느낄 나라는 중국이다. 여러차례 유혈사태까지 빚은 티베트를 비롯,신강의 위구르·내몽고 자치구 등의 불안을 꼽을 수 있다.
중동지역에도 그런 요소는 많다. 쿠르드민족,아르메니아민족이 이란·이라크·터키·소련 등에 분산되어 있음으로 해서 핍박을 받아왔던 과거를 극복하기 위해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나설 경우 생겨날 위기상황은 엄청날 것이다.
이밖에 팔레스타인민족의 국가창설 움직임,북에이레의 분리운동,카슈미르의 영토분쟁 등이 있다. 이들 분쟁지역의 소수민족들은 소련 공화국들의 분리독립의 결과를 자신들이 지금부터 취할 행동의 나침반으로 삼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소련내 공화국들의 독립선언이 급격한 혼란속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고 본다. 발트3국의 독립은 다른 어느 공화국들보다 역사적 정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속히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다른 공화국의 경우 대세의 원심력에만 휩쓸려 대거 탈퇴할 경우 이에 대한 반작용이 다시 소련 보수파 진영에서 나올 위험이 크다. 그리고 앞서 지적한 다른 분쟁지역의 시한폭탄에 불을 댕길 위험도 큰 것이다.
민족자결의 원칙은 그것대로 존중되어야 하고 그로 인한 전쟁의 위험이란 현실문제는 그것대로 최대한 예방해야 된다. 이 두 모순된 명제를 조화시키는 일은 현실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이 과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세계가 지향하는 새 질서의 성패가 가름되는 중요한 과제다. 1차적으로 그 책임은 소련 집권자들에게 있다. 소 연방조약이 그 첫번째 열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서방세계는 소련 강대국판도의 와해에만 좋아할 것이 아니라 그 여파가 다른 지역에서 유혈 참극으로 번지지 않도록 대비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