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민 특파원 서희·제마부대를 가다] "한국軍 최고" 환자들 장사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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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만큼만 해달라."

이라크 남부에 가면 자주 듣는 말이다. 특히 한국의 서희(공병).제마(의료)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나시리야 주민들은 한국군을 어느덧 '우리편'으로 간주할 정도다.

지난 19일 기자는 나시리야의 한 이발관에 들렀다. 라마단 단식 기간이라 손님이 없어 졸고 있던 이발사 아딜 사이드(27)가 기자를 반겼다.

정성을 다해 이발을 마친 사이드는 "돈을 안 받겠다"고 했다. 한국 사람이 왔다는 얘기를 듣고 이발소에 몰려든 주민들도 "한국군이 이곳에서 무료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데 돈을 받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말했다.

어떤 주민은 "여기에 주둔하고 있는 이탈리아.루마니아, 그리고 미군도 한국인들만큼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희부대(부대장 천영택 대령)는 전쟁으로 파괴된 나시리야 바트당(후세인 당시 집권당) 당사를 보수해 사용하고 있다.

부대는 이곳을 현지 주민을 위한 다양한 대민(對民) 봉사센터로 활용하고 있었다. 입구에는 '서희 기술학교'라는 아랍어 현수막이 걸려 있다.

뒤뜰에 마련된 실습장에는 이라크 청소년들이 눈을 반짝이며 한국군 선생님으로부터 목조.벽돌쌓기.자동차 정비를 배우고 있었다. 통역 겸 기술학교 관리를 맡고 있는 알리 아비드(39)는 "거리에서 풀이 죽어 있던 이라크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미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며 "제1기 학생들의 졸업식에서는 눈물이 날 정도로 기뻤다"고 말했다.

서희기술학교는 현재 제3기 학생들을 선발, 8주 과정으로 직업훈련을 시키고 있다.

교장직을 맡고 있는 박상중 소령은 "자금 부족으로 공구와 자재도 부족하고 의자도 없다"며 애로를 털어놓았다.

천영택 서희부대장도 "훈련과정을 마친 학생들이 직장을 잡지 못해 실망한다"며 "한국 기업의 진출이 조속히 이루어져 이들이 고용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희기술학교에서는 주민을 대상으로 한글.영어.태권도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나시리야에서 제마부대(부대장 신창우 중령)의 인기도 치솟고 있다. 제마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부대 주변에는 매일 아침 나시리야 주민은 물론 주변 지역에서 몰려든 환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3개월을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정도다. 하루 평균 1백50명의 환자가 찾아들어 병원이 위치한 탈릴 공군기지 밖에 아예 제마병원 접수창구가 따로 있을 정도다.

병원 문 밖에는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노인들이 그늘에 누워있었다. 한 노인은 "이 병원이 최고라는 말을 듣고 마지막 희망으로 찾아 왔다"고 힘없이 말했다. 병실 내에는 수술받은 환자들이 누워 있었다. 라아드 치찬(45)은 "5년 전 자동차 사고로 입은 허벅지 골절로 고생하다 이곳에 와서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신창우 중령은 "의료장비가 제한돼 있어 복잡한 수술은 하지 못하지만 1차 진료병원으로서 최선을 다해 환자들을 돌본다"고 설명했다.

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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