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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리시티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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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0년 전쯤 제임스딘이라는 한국의 내의 상표가 뜻밖의 국제 송사에 휘말릴 때만 해도 이는 사뭇 낯선 용어였다. 1955년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마감한 미국의 은막 스타 제임스 딘의 유족이 이 속옷 회사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수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낸 빌미는 '퍼블리시티권 침해'였다. 당시 법원은 원고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뜨고 관련 소송이 잇따르면서 판례가 이런 권리를 인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정경석,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 분쟁사례집')

이 분쟁의 중심에는 초상권이 있었다. 초상권은 사진.영사기의 탄생 이후 100년 넘는 갈등의 역사를 지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20세기 중반 서구에서 뿌리내리기 시작한 퍼블리시티권이다. 상업적 초상권이 그것이다. '스타'들은 자신들의 얼굴과 이름이 엄청난 돈벌이가 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사생활이나 명예 보호뿐만 아니라 '유명'이라는 무형자산을 지키는 데 이 권리를 애용하기 시작했다.

한류 스타 배용준은 지난해 100억원 가까운 세금을 납부해 '걸어다니는 1인 기업'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와 함께 장동건.이병헌 등 세 명의 스타는 원치 않는 자신의 사진을 쓴 음반사들을 상대로 최근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퍼블리시티권을 내세운 덕분이었다. 이름을 사고파는 '성명권 시장' 또한 활성화될 조짐이다.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은 모바일 야구 게임처럼 선수 이름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업체들한테서 조직적으로 이름값을 받아낼 태세다.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봄 공모를 통해 선정한 '초상사용권'을 어색한 외래어 대신 써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그만큼 퍼블리시티권은 우리 생활에 깊숙이 뿌리내린 용어가 됐다.

최근 판결을 보면 우리도 제임스 딘의 경우처럼 망자(亡者)의 퍼블리시티권을 버젓이 요구할 날이 멀지 않은 것 같다. 역시 30대 중반에 요절한 '메밀꽃 필 무렵'의 소설가 고 이효석 선생을 둘러싼 판결이다. 그의 상체 모습이 들어간 상품권을 발행한 업체를 상대로 유족이 낸 소송에서 재판부는 "고인의 초상권도 저작권의 일종으로 상속이 된다. 또 사후 50년까지 그 권한을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시효 만료로 청구는 기각됐다. 하지만 저세상 사람의 얼굴까지 재산권으로 간주한 법원의 판단이 의미심장하다. 인기 스타나 저명 인사들이 유산상속 목록에 퍼블리시티권 증서를 포함하는 일이 조만간 벌어질지 모르겠다.

홍승일 경제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