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려대 사태, 이 총장 스스로 풀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이필상 총장의 논문 표절 의혹으로 불거진 고려대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최고 지성을 자처하는 대학 교수들의 진흙탕 싸움이 보기 민망할 지경이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명문 사학으로서의 명예가 땅에 떨어져 짓밟히는 것은 안중에도 없단 말인가. 자부심을 갖고 대학 문을 들어설 새내기 대학생들의 얼굴을 어찌 보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동안 사태를 지켜보면서 고대가 스스로 대승적이고 합리적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리라 믿고 논평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도저히 상아탑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비방과 폭로로 얼룩지고 있다. 이 총장은 "취임 전 몇몇 경영대 교수들로부터 표절을 빌미로 사퇴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으라는 압력까지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사자 교수들은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언이었을 뿐이며 그것을 협박 운운하는 것은 표절 문제를 희석하려는 물타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과거 밀실 정치 시대의 정상배들이나 인면수심의 조직 폭력배들에게 어울릴 법한 말과 행동들이 교수 사회에서 난무한다는 것 자체가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 문제는 이 총장 스스로 푸는 게 순리다. 교수의회가 재단에 결정권을 넘겼다고는 하지만, 재단이 어떤 결론을 내리더라도 교수 사회의 분열은 예고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총장직을 수행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총장은 지난해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논문 표절과 중복 게재 의혹으로 물러날 당시 연합공보 기고문에서 "표절은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 안 된다"고 썼다. 물론 이 총장은 자신의 경우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의혹이 터져나오고 그로 인해 학교와 교수 사회가 아물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만큼 이제 결단을 내리는 게 옳다고 본다.

양심의 잣대는 타인보다 자신을 향할 때 더욱 엄격해져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도리다. 그것이 학교의 명예를 더 이상 실추시키지 않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