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고장에선] 인사 시비·道政 파행 … '제주號' 휘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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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자치 제주호'가 방향타를 잃어가고 있다.

사안마다 논란이 불거지고, 현안마다 '표류'를 거듭해 난파 위기까지 직면했다. 지방선거의 후유증과 임기말 교육행정의 레임 덕 현상 등이 꼬리를 물고 있지만 사정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을 뿐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 끊임없는 인사 시비=제주도는 8월→9월→10월 등으로 미뤄 오던 인사를 지난 18일 부분적으로 단행했으나 도청 안팎에서 '정실 인사'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도는 지사의 핵심 측근으로 통하는 J사무관을 지난 7월 노동부에서 불러들여 대기발령했다가 이번에 공무원교육원 수석교수로 발령했다.

이번 인사는 또 4.3지원사업소 전임계약직 전문위원 발령과 관련해서도 4.3연구소와 제주민예총로부터 "어처구니 없는 인사에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비난을 샀다. 이에 대해 제주도 관계자는 "오해 소지는 있지만 정실 인사는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제주도만이 아니다. 제주도교육청은 사무관 승진예정자(3명) 선정을 놓고서도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져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은 교육청 강모(59)국장이 지난 16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태까지 불러왔다. 의혹은 내년 2월 퇴임 예정인 교육감의 학교 기자재 납품비리 의혹 등으로 이어진데다 최근엔 교육감이 지난해 8월 계약한 아파트의 불법 구조변경 사실까지 불거져 제주교육행정이 총체적 난관에 봉착했다.

◇ 중심 못잡는 도정, 파행 연속=불법 선거 혐의로 2심에서까지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우근민 지사가 지사직 상실위기에까지 몰리면서 도정 또한 파행이다.

민선 2기 제주자치의 최대 화두로 꼽혔던 '행정구조 개편'도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특별자치도'구상을 제시하면서 혼선을 거듭하고 있다. 도는 지난 4월 지방행정연구원에 용역을 의뢰, 현행 제주도의 4개 시.군체제를 없애거나 개편하는 방안에 대한 검토에 나섰지만 대통령이 지난 10월 말 '1국2 체제에 버금가는 특별자치도' 지원 구상을 밝히자 돌연 행정부지사를 단장으로 한 기획단을 구성했다. 연내 도민설명회→내년 초 도민투표까지 구상하던 행정개편 일정은 이제 '특별자치도'구상으로 원점에서 재검토되고 있다.

또 제주의 특장적 축제로 평가받던 '세계섬문화축제'는 그간 부실 운영에도 불구하고 '지속 개최'여론이 많았지만 내년 3회 행사에 대해 아직까지 결론을 못 내놓고 있다. 도는 "여론을 수렴, 결론내겠다"는 시한을 6월→7월→9월 등으로 미뤄오다 이달 초 실무 부서에서 올린 예산 20억원을 예산 부서에서 "방침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액 삭감했다.

이 상황 속에 일부 관변단체들 사이에선 대법원 선고를 앞둔 전.현직 지사를 위한, 주체도 모호한 구명성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참여환경연대 등 8개 시민단체는 "위법행위를 무마시키려는 시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며 "여론 호도와 얄팍한 정치적 술수"라고 비판하고 있다.

◇ 견제.비판도 무위=지난 21일부터 열린 제주도의회 행정사무감사에서는 ▶선심성 대학생 해외배낭연수 ▶무분별한 민간단체 보조 등 도의 각종 사업에 대한 방만한 추진.집행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그동안 수차례 의회의 견제가 있었지만 결국 일부 예산을 줄이는 정도로 미봉될 뿐 도 집행부의 독주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며 회의적인 시각이다.

조성윤(사회학)제주대 교수는 "지방선거를 세 차례 거치며 제주가 관료주의.편가르기 병폐 등 각종 고질적 폐해로 곪을대로 곪았다"며 "무관심.체념.갈등의 당사자였던 제주도민도 이제는 당면한 제주자치의 근원적인 치유와 처방을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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