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뒷받침할 집시법 개정을(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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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의 집회 및 시위와 이에 대한 당국의 대응이 「과격시위의 강행」과 「원천봉쇄」라는 오랜 악순환에서 벗어나 「신고」와 「허용」이라는 정상 궤도로 옮겨가는 기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이는 집회와 시위는 최대한 보장하되 그것은 어디까지나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대다수 국민의 요구에 비로소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는 치안본부가 1일의 전대협 제5기 발대식과 2일 서울·부산·광주에서 열릴 예정인 「국민대회」를 최대한 허용키로 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폭력시위의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는 무조건 허용하지 않던 이제까지의 방침에 비추어 볼 때 이번 결정은 이례적으로 진취적인 것이다. 우리는 「원천봉쇄」와 「시위강행」의 악순환은 당국의 이러한 선도적 조처에 의해서만 그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전대협과 국민대회측이 법절차에 따라 집회신고서를 낸 것도 함께 평가할만한 일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데는 당국이 앞장 서야 할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당국의 노력만으로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1일과 2일의 집회 및 시위가 기대하는대로 완벽히 평화적으로 시종하지는 않을는지도 모른다. 집회 및 시위의 장소와 방법에 관해 경찰과 대회주최측간에 부분적인 견해차가 있고 또 이제까지의 관행으로 보아 얼마간의 충돌도 능히 예상된다. 그러한 사소한 충돌도 없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설사 그것이 벌어진다고 해도 그때문에 모처럼 돋기 시작한 변화의 싹이 무지러져서는 안될 것이다. 한 술 밥에 배부를 수는 없다. 작은 변화의 싹이라도 가꾸고 키워가는 것이 중요하며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라고 본다.
새로운 시위관행을 정착시켜 나가는데 있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당국은 당국대로 집시의 장소와 방법에 대해 그 허용범위를 더 넓혀 나가야 할 것이고 집시참여자들도 약속한 것을 엄격히지켜야 한다. 화염병과 돌을 던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허용된 범위를 벗어나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는 것은 불법적인 것이며 시민의 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것이다.
시위가 시민생활에 전혀 불편을 주지 않을 수는 없겠으나 그를 최소화하려는 노력과 배려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최근의 변화조짐에 고무받으면서도 새로운 시위관행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이것이 결국 법과 제도의 개선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본다. 당국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집회 및 시위문화개선방안」도 이제까지보다는 한걸음 나아간 것이라고는 보지만 그것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기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집시의 목적은 자신들의 주장을 최대한 알리기위한 것인데 일반 시민들의 눈길을 모을 수 없는 외지고 한정된 장소로 그것을 한정하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당국의 판정에 불복했을 경우 사실상 구제절차가 없는 것도 문제다.
온 국민이 바라는 평화적인 집시관행의 마련은 이제 겨우 그 첫 발을 내디뎠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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