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고건 전 총리 대통령 불출마 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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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건 전 총리가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그는 오랫동안 지지율 30%대를 구가하던 부동의 1위였다. 그러나 청계천과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급등, 여권의 지지율 급락과 통합신당 혼란, '고건 신당'의 지지부진이 이어지면서 그는 10%대 3위로 추락했다.

그는 퇴장했지만 국민의 지지는 나름대로 실체가 있었다. 그는 장관 세 번, 서울시장 두 번, 총리 두 번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 탄핵위기 때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경력으로만 보면 그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공무원이요 행정가다. 특히 권한대행으로 안정감과 행정 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추락했는가.

행정관료와 정치 지도자의 필수 능력은 차원이 다르다. 지도자는 국면마다 유권자 앞에 자신을 던져 "내가 이것을 이렇게 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대패한 이래 고건씨는 수동(受動)의 전략을 썼다. 공황에 빠진 여권이 결국 자신을 추대할 수밖에 없을 걸로 기대했다. 정권 초대총리로서 정권의 혼란상을 어떻게 수습하겠다고 나서기보다는 감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를 바란 것이다. 그의 기대와 달리 여권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여권이 몰락하면서 '장래의 여권 후보감'인 자신도 동반 추락했다. 이 의미는 무엇인가. 웬만한 정도의 용기나 비전이 없이 과거의 점수만으론 정치 지도자로 버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사회가 그만큼 성숙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가 무리수를 두거나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깨끗이 물러난 것은 의미 있는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중도 포기 사례는 여럿 있었지만 오랫동안 선두주자였던 이가 그만둔 것은 처음이다. 그의 퇴장을 보면서 대선 주자를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는 거품이 없는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고 전 총리는 우리 사회의 원로다. 그가 정치의 영역에서 벗어났지만 무욕(無慾)의 마음으로 다른 분야에서 국가에 계속 기여하기를 기대한다.